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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코인 폭락에 연락두절"…삼성 'MZ 빚투족' 특별관리 나섰다

'빚투' 청년층, 잠적·퇴사 이어지자

올 초 대형로펌과 도산업무 협약

개인회생·파산 희망시 비용 보조 등

조직관리 차원서 이례적 복지 도입

도산한 직원의 사내 대출금 회수 등

최근 관련 법적자문 2배 이상 늘어

업무공백 우려 커지며 산업계 비상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6일 경기도 수원사업장을 찾아 MZ세대 직원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 올해 초 한 대기업 마케팅 부서에서는 신제품 판매 전략을 짜다가 비상이 걸렸다. 경쟁사 자료 조사를 담당하던 막내 사원 김성민(가명) 씨가 갑자기 연락이 두절됐기 때문이다. 동료들은 최근 김 씨가 사내 대출을 받고 암호화폐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입었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 아무도 그의 소식을 알지 못했다. 그러던 중 법원에서 김 씨의 회생 문제로 채권자 의견을 받는다는 문서가 회사로 날아왔다. 그제서야 동료들은 김 씨의 도산 신청 사실을 알게 됐다.

올해 주식·암호화폐 가격이 폭락하면서 기업들이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 직원 관리 문제에 비상이 걸렸다. 김 씨의 사례처럼 빚까지 내 주식·암호화폐 등에 투자했다가 엄청난 손실을 입은 채 연락이 두절되거나 회사에 뜬금없이 법원 문서가 날아오는 일이 벌어지는 탓이다. 가뜩이나 젊은 직원의 잦은 이직으로 인력 관리에 어려움을 겪던 기업들은 업무 공백을 막기 위해 MZ 사원의 도산 처리까지 돕고 있는 실정이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올해 초 대행사를 통해 국내 한 대형 로펌과 업무협약을 맺고 계열사 직원들의 도산 사건을 처리하고 있다. 회사가 개인회생이나 파산 희망 수요를 조사한 뒤 로펌에 희망자를 소개하면 로펌이 해당 직원의 도산 업무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파산관재인 선임 비용, 변호사 수임료 등 도산 처리 비용은 회사에서 일부 부담해준다. 다만 ‘코밍아웃(코인+커밍아웃)’하면 회사에서 문제 사원으로 낙인찍힐 것을 두려워해 실제 신청자는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에 따라 빚이 재산보다 많아 파탄에 직면한 채무자는 법원에 회생·파산 신청을 통해 빚 일부를 면제받을 수 있다. 일정한 소득이 있어 갚을 여력이 있으면 회생, 그렇지 않으면 파산을 택한다. 파산을 하면 공무원 등 직업상 제약이 생기고 신용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회생 신청자가 파산 대비 두 배 많다. 회생의 경우 채무자 청산가치(재산 처분액)보다 3~5년간 돈을 벌어 갚을 수 있는 금액이 더 많아야 한다.

법조계는 기업이 사내 변호사 상담이 아닌 대형 로펌과 제휴까지 맺어 직원 도산 문제를 돕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과거에는 무리하게 개인사업을 벌이거나 도박에 손을 대지 않는 이상 주변에서 회생·파산에 이르는 월급쟁이를 찾아보기조차 힘들었고 회사가 신경 쓸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그룹인 삼성에서 이러한 사내 복지 제도를 도입한 것은 주식·코인에 손을 댔다가 빚더미를 떠안은 젊은 사원들이 늘면서 기업의 인력 관리 고민이 더 깊어졌다는 의미다. 지난해 SK하이닉스 4년차 직원이 경영진에게 보낸 성과급 인상 요구 e메일로 산업계가 발칵 뒤집어지면서 기업 간 MZ세대 붙잡기 경쟁이 벌어졌는데 올해는 ‘빚투(빚을 내 투자하는 행위)’ 직격탄을 맞은 MZ세대의 이탈까지 걱정하고 있다. 주요 기업 이직률이 1년 새 두 배까지 치솟은 상황에서 젊은 직원들이 빠져나가면 채용·교육 등 추가 비용이 들어가고 업무 공백도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보기술(IT)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한 대표는 “요즘 회사 대표들끼리 모이면 어느 팀 직원이 연락두절됐더라, 어느 회사에서는 목숨을 끊은 직원까지 있다더라 이런 이야기들을 한다”며 “MZ의 빚투·영끌 여파가 정말 심각한 것 같다”고 우려했다. 법무법인 지평의 권순철 구조조정팀 팀장은 “이직이 아닌 이상 갑자기 젊은 직원이 회사를 그만둔다면 대부분 코인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며 “대기업이야 복지제도가 잘돼 있어서 도산 상담도 해주지만 가뜩이나 이직이 잦은 중소기업에서는 고민이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주식과 암호화폐 가격이 폭락하고 금리는 급등하면서 개인 도산 문제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법원 통계를 보면 개인회생 신청 건수는 올해 7월 기준 4만 9367건으로 전년 동기(4만 7468건) 대비 약 2000건 증가했다. 특히 서울회생법원에 접수된 개인회생 신청 중 2030세대 비율은 2020년 42.5%에 그쳤지만 지난달에는 이 비율이 54%(20대 21%, 30대 33%)로 치솟았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암호화폐 투자자 중 2030세대 비율은 55%에 달했다.

대형 로펌에도 올 들어 “갑자기 법원에서 관계인집회 안내문과 같은 문서들이 날아왔다”며 직원 도산 문제를 자문하고 싶다는 기업의 문의가 급격히 늘었다. 도산 사실을 숨기기 위해 법원의 송달 문서 수령지를 직장이 아닌 자택으로 지정해놓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전세금이나 생활자금 등 사내 대출을 받았다면 회사는 채권자 자격으로 법원 문서를 송달받게 된다. 그제서야 직원의 도산 신청 사실을 인지한 회사는 해당 직원에게 계속 월급을 지급해야 하는지, 대출금은 돌려받을 수 있는지 고민에 빠진다. 대기업 법무팀조차 이 같은 상황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광장에서 도산 사건을 맡고 있는 홍석표 변호사는 “기업들이 직원 도산 문제로 상담을 의뢰하는 사례가 최근 두 배가량 늘었다”며 “높은 연봉을 받는 대형은행에서조차 직원 도산을 걱정할 만큼 기업마다 고민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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