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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적 기괴함…다니엘 리히터식 '역사 재해석'

■아시아 첫 개인전

베를린 장벽 붕괴·대사관 점거 등

역사적 사건 초현실적 색채 표현

마곡동 '스페이스K'서 28일까지

다니엘 리히터의 2000년작 '피녹스' /사진제공=스페이스K




지금의 이 시대를 역사는 어떻게 기억할까?

흥겨운 파티의 한 장면처럼 보일 수도 있다. 기분에 취한 사람들이 서로를 부둥켜 안고, 얼큰하게 취한 이는 벽에 몸을 기대기도 하고 조금씩 선을 넘기도 한다. 노랗고 붉은 색이 열기를 끌어올리고, 보라와 초록색이 화려함을 더한다. 독일화가 다니엘 리히터의 2000년작 ‘피녹스(Phienox)’는 그렇게 보였다. 코오롱(002020)그룹이 운영하는 강서구 마곡동 ‘스페이스K 서울’이 기획한 리히터의 아시아 첫 개인전에 선보인 대표작 중 하나다.

실제 그림의 배경은 그리 간단치 않다. 한 장면은 1989년의 베를린 장벽 붕괴의 날이요, 또 한 장면은 1998년 케냐와 탄자니아에서 동시에 벌어진 미국 대사관 폭탄 테러 사진이었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이념의 벽과 결코 흔들리지 않을 듯한 세계 초강대국의 영역이 그렇게 몰락하는 것을 목격한 작가는 “역사의 반복”을 감지했다. 서로 다른 시공에서 발생한 두 사건을 화가는 열화상 감지기로 포착한 듯한 초현실적 색감과 형태로 한 화폭에 담았다. 이장욱 스페이스K 수석큐레이터는 “스스로를 불태우고 그 재 속에서 되살아나는 피닉스처럼, 그림 속 섬광 같은 노란빛은 몰락과 부흥을 반복하는 역사의 상징이자 그 현장에서 희생되어 온 사람들의 화신”이라며 “보는 사람에 따라 각자 다른 감각으로 받아들이고 다양한 해석을 내릴 수 있는 게 바로 리히터식 화법”이라고 설명했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피닉스’의 모음 하나를 바꿔 ‘피녹스’라 제목 붙였다.

다니엘 리히터 2000년작 '투아누스' /사진제공=스페이스K




바로 옆에 걸린 같은 크기(252×368㎝)의 ‘투아누스’ 또한 리히터식의 ‘현대 역사화’다. 싱그러운 풀밭 위, 녹음 우거진 나무 아래에서 젊음을 만끽하는 청년들 같지 않은가. 인상주의 미술이 일어나던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감각적 회화를 연구하던 작가의 눈에 잡지에 실린 독일 프랑크푸르트 타우누스안라게 공원 사진이 들어왔다. 1990년대 초 이전만 해도 이 공원은 약 1500명의 마약중독자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조그맣게 실린 경찰의 마약범 단속 장면이 성적(性的) 유혹의 모습으로 보인다고 느낀 작가는 화려한 색감의 환상적인 그림으로 바꿔놓았다. 그의 출세작이 됐다.

대략 2000만원 쯤이던 작품이 30억원을 줘도 못 살 정도로 인기가 치솟았지만, 리히터는 한 가지 경향에 안주하지 않았다. 2011년작 ‘헤이 조’는 전혀 다른 화풍이다. 카우보이 모자를 쓴, 한때 정열과 남성성의 상징이던 ‘말보로맨’이 보인다. 한때 동양의 신비와 모험정신을 상징했으나 별안간 테러와 갈등의 이미지를 뒤집어 쓴 터번 쓴 사내가 담뱃불을 붙여주는 모습이다. ‘마초’였던 말보로맨은 낭만의 상징이긴 커녕 발기부전과 폐병으로 위축됐을 뿐이다.

다니엘 리히터의 2011년작 '헤이 조' /사진제공=스페이스K


또다시 변신한 최근 작에서 작가는 형태를 허물어뜨린 강렬한 색감의 ‘인물화’를 보여주는 중이다. 전쟁에서 한쪽 다리를 잃은 병사들이 의지하고 걷는 모습부터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까지 미디어에서 포착한 사람들이 화면 속에 녹아내렸다. 음악을 미술로 버무려놓은 듯한 새로운 차원의 표현, 팽팽한 긴장감이 인상적이다.

“그림을 그리는 방식과 마찬가지로 제목도 즉흥적으로 붙인다”는 작가는 일부러 제목의 철자를 틀리게 적곤 한다. 문법에 어긋난 전시 제목 ‘나의 미치광이웃(My Lunatic Neighbar)’도 그런 의도다. 우리는 올바른 정신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묻는 듯하다. 전시는 2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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