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검사·수사관이 연이어 사의를 표하는 등 엑소더스 위기에 직면했다. 공수처는 지난달 새로운 CI(Corporate Identity)를 발표하고, 인력을 충원하는 등 변화를 모색 중이다. 하지만 누적된 무력감과 지휘부에 대한 불만, 국회 무관심까지 3중고에 휩싸이면서 앞으로 ‘탈(脫) 공수처’가 한층 가속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 수사 1부 이승규 검사와 김일로 검사가 지휘부에 사직 의사를 밝혔다. 이는 수사3부 문형석·김승현 전 검사, 최석규 부장검사가 사직한 데 이은 추가 이탈 움직임이다. 이들이 떠날 경우 공수처 검사는 처장·차장을 포함해 18명, 실제 수사·공소 유지를 담당할 인원은 13명으로 줄어든다. 공수처는 현재 검사 3명을 추가 임용하기 위해 후보자들을 대통령에게 추천한 상태다. 하지만 인적 수혈·이탈이 연이어 있으면 실제 인원은 정원(25명)에 미치지 못하는 21명에 그치게 된다. 검사 외에 수사관 2명도 현재 사의 뜻을 밝힌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탈공수처 현상을 막기 위해선 대내외적으로 지적받고 있는 문제점에 대한 대대적 수술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은다. 누적된 무력감과 지휘부에 대한 불만 등 상처를 치유하지 않고선 병만 악화시킬 수 있다는 진단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공수처가 설립 취지와 다르게 각종 사건을 검찰·경찰 등으로 다시 이첩한데다, 공을 들인 사건조차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며 “이는 무력감 확대와 지휘부에 대한 불만 등으로 표출되면서 결국 공수처 인력이 이탈하려는 움직임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초라한 수사 성적표가 ‘계속 있어도 희망이 없다’는 회의론으로 자라나고, 검사·수사관이 ‘공수처를 떠나야 겠다’고 결심하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얘기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부정 채용 의혹’ 사건을 제외하면 공수처가 출범 이후 기소한 사건은 스폰서 검사 사건·고발 사주 의혹 사건 등 2건 뿐이다. 그나나도 공수처가 총력을 쏟은 고발 사주 의혹 수사는 사실상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대내외 신뢰 추락으로 이어지면서 고발인들이 공수처가 아닌 다른 사정기관에서 수사를 하게 해달라는 요청하는 이례적인 장면까지 연출됐다. 실제로 ‘서해 피격 공무원’ 유족은 문재인 정권의 고위직들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하면서 “사건을 공수처에 이첩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공수처에 대한 ‘안성맞춤형’ 극약 처방으로 전문가들이 지휘부를 포함한 대대적 인적쇄신이 꼽는 이유다. 초라한 수사 성적이 무력감 확산으로 또 이는 검사·수사관 이탈로 이어지고 있는 만큼 이른바 ‘특수통’ 출신 인력 확보로 수사력에 대한 대내외 신뢰부터 우선 쌓아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설립 전만 해도 수사 경험이 풍부한 검사 출신 변호사나 검찰 수사관들이 공수처 지원을 고려한다는 이야기가 자주 나왔으나 현재는 정반대”라며 “이제라도 각종 당근을 제시해서라도 우수 수사 인력을 확보해야 더 이상의 추락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수사력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서 국회마저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법 개정 무산으로 변화마저 꾀하지 못하나면 결국에는 공수처 무용론이 확산되면서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앞선 지난 5월 16일 취임 후 두 번째 기자간담회에서 공수처 인력 확대를 호소한 바 있다. 검찰의 100분의 1에 해당하는 검사 인력으로, 검찰을 견제하고, 고위공직자 범죄를 수사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검사·수사관 등 공수처 인력 확대 등을 골자로 한 공수처법 개정안은 여전히 국회 계류 중이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공수처법 개정안은 총 24건이나, 이 가운데 국회 문턱을 넘은 건 단 1건 뿐이다. 이가운데 19건은 여전히 계류 중이다. 4건은 대안반영 폐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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