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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야생 여우와 교감…유년의 상처를 치유하다

■여우와 나

캐서린 레이븐 지음, 북하우스 펴냄





‘우리(여우와 나) 사이에 놓인 것은 2m와 가냘픈 물망초 한 포기 뿐이었다. 그가 맨들맨들한 자기 자리에서 미동도 없이 기다리는 동안 나는 등받이 없는 부드러운 의자에서 몸을 흔들다 균형을 잃고 버둥댔다. 그러고는 매끄러운 표지의 페이퍼백을 펼치며 말했다. “앙투안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란다.”’

화자인 저자는 세상에서 사라져버리는 게 소망인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 겪은 부모로부터의 학대가 원인이었고, 그리하여 국립공원 관리인이 되어 숨듯이 산을 파고 들었다. 조금 놀라운 점은 세상에서 사라지려 할수록 자연이 강한 힘으로 그를 끌어당겼다는 사실이다. 황무지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홀로 살아가기 시작한 저자에게 어느 날부터 매일 같은 시간 여우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마치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와 대화 나누던 그 여우처럼. 저자는 매일 오후 4시15분이면 어김없이 집 앞에 도착하는 여우에게 ‘어린 왕자’를 읽어주기 시작한다. 책의 문장들을 읽어주고, 여우에게 말을 건넨 다음 15초 동안 기다린다. 침묵의 시간은 “그(여우)가 말할 차례라는 뜻”이다.



미국의 생물학자 캐서린 레이븐이 쓴 ‘여우와 나’는 인간과 동물 사이의 우정을 그리고 있다. ‘어린 왕자’와 그의 여우는 서로를 길들였지만, 저자는 우연히 만난 야생 여우를 통해 세계와의 연결고리를 회복해 간다. “나는 너를 원한 적이 없다”고 말하는 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자란 저자는 사람을 피하고 싶었고, 동물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인간관계가 버거웠다. 황폐한 땅에서의 홀로 지내려던 계획이 뜻밖에도 여우라는 ‘친구’를 만나게 했다.

여우와 나는 서로를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저자는 여우의 예민함과 경계심을 살폈고, 여우는 저자의 무의미한 움직임과 관심을 알아챘다. 말과 객관의 지배를 받는 인간세계의 삶, 행동과 직관으로 살아남는 자연 생태계 속 존재는 그렇게 교차한다. 책의 묘미는 여우를 통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 가는 저자의 심리와 상황 묘사다. 호숫가에 지은 작은 오두막에서 최소한의 물건만 두고 살아가며 수필을 쓴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생태주의 수필이 풍긴 감동을 다시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여우 덕분에 데뷔작을 쓴 저자는 “두 존재의 기적 같은 마주침에 대한 시적인 묘사는 자연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혔다”는 찬사를 받았다. 책은 PEN 에드워드 윌슨상, 노틸러스 북어워드 금메달 등 다수의 출판상을 받았다. 1만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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