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신용 경색에 늑장 대응한 데는 위기의식 없이 입을 닫은 금융연구기관의 책임도 적잖다. 시장의 이슈에 대해 정부에 정확한 정보와 분석을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 함에도 어떠한 액션도 없었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연구원·자본시장연구원·보험연구원 등은 지난달 28일 강원도 레고랜드 시행사인 강원중도개발공사(GJC)의 회생 신청으로 채권과 기업어음(CP) 시장이 혼란에 빠졌음에도 약 3주 동안 이와 관련해 보고서를 단 한 건도 내놓지 않았다. 금융연구원은 이 기간 ‘거시 충격에 대한 연체율 스트레스 테스트’, 자본시장연구원은 ‘외국환거래법의 개편 필요성 및 방향에 대한 고찰’ 등과 같은 거시경제 위주의 주제가 다뤄졌을 뿐 정작 눈앞에 다가온 자금 경색 위기는 외면했다.
공적 연구기관들이 자금 경색 위기를 등한시하는 동안 위기에 직격탄을 맞은 증권사 리서치센터는 물론 신용평가사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경자 삼성증권 연구원은 17일 주간 정례 브리핑 자료에서 ‘레고랜드발 채권·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 불안’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 연구원은 “이 사건으로 지방자치단체가 보증한 채권의 불신이 커졌고 PF 시장의 리스크 확대는 물론 전반적인 부동산 대출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유동성 축소로 엄중한 시기에 이해할 수 없는 지자체의 결정”이라고 직격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19일 ‘레고랜드 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미상환 이후 PF 유동화 발행시장 동향’을 재점검했다. 홍성기 나이스신용평가 실장은 “유동화증권 발행시장에서 금리가 급격히 상승하고 건설사·증권사 신용 보강에 의한 유동화증권의 차환 발행 위험이 확대돼 PF 유동화증권 거래가 크게 위축됐다”면서 “유동화 시장에 유례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정책 당국의 조속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탄광 속 카나리아를 날렸다. 실제 대통령실은 19일에서야 경제·금융 정부 부처를 불러 모아 긴급 대안 모색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연구기관들이 증권사나 신평사와 달리 경보음을 울리는 데 주저한 것은 ‘자기실현적 위기’를 경계하는 관료들의 눈치를 봤기 때문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연구원은 정책 실기론에 대한 물음에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전직 연구기관장 역시 “아무래도 정부 입맛에 맞는 주제를 선정하고 연구를 수행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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