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북방한계선(NLL) 남쪽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을 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즉각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고 “분명한 대가를 치르도록 엄정한 대응을 취하라”고 지시했다. 우리 군은 곧바로 전투기를 띄워 NLL 이북 공해상에 공대지미사일 3발을 정밀 사격했다. 전문가들이 “북한의 도발은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평가한 가운데 북한 역시 “무력의 특수한 수단들은 부과된 자기의 전략적 사명을 지체 없이 실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7차 핵실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 등을 예고한 셈이다.
합동참모본부는 2일 북한이 강원도 원산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발사한 SRBM 3발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1발은 동해 NLL 이남 공해상에 떨어졌다. 공해상의 미사일은 속초에서 57㎞, 울릉도에서 167㎞ 떨어진 지점에 탄착했다. 북한은 도발에 앞서 미사일의 비행 방향을 울릉도 쪽으로 잡고 낙탄 지점을 공해상으로 설정하는 등 치밀한 계산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北, 울릉도 방향 정조준한 뒤 중간에 떨어뜨려…노골적 위협
북한은 동시에 동해와 서해에 최소 25발 이상 다양한 종류의 미사일도 발사했다. 또 강원도 고성 일대에서 동해 완충 구역에 100여 발의 포도 쐈다. 동·서해상으로 지대공미사일 등으로 추정되는 6발의 추가 발사도 포착됐다.군의 한 관계자는 “여러 미사일의 발사 시간과 장소를 다르게 해 한미 정보 당국의 탐지 기능을 시험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우리 군은 대응 사격으로 맞섰다. 경계 태세를 2급으로 격상하는 한편 공군 F 15K, KF 16 전투기를 출격시켜 NLL 이북 동해상을 향해 ‘슬램 ER(사거리 278㎞)’ 등 공대지미사일 3발을 쐈다. 합참은 “‘NLL 이북 공해상, 북한이 도발한 미사일의 낙탄 지역과 상응한 거리’의 해상에 정밀 사격을 실시했다”고 전했다.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는 북한의 도발은 결국 7차 핵실험 등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전문가들은 여섯 차례나 핵실험을 하고 2017년도에 핵무력 완성 선언을 했던 김정은 정권이 다시 핵실험을 강행하려는 것은 핵무기 실전 배치의 문턱을 넘으려는 수순이라는 얘기다. 다양한 투발 수단에서 운용할 수 있도록 핵무기 기술의 표준화·안정화·소형화 단계를 밟겠다는 것이다.
군 관계자는 “미국과 러시아는 1번씩의 핵실험으로 핵무기 보유국이 됐고 핵 무장을 한 인도도 2번만 핵실험을 했다”며 “북한은 이미 6번이나 핵실험을 했기 때문에 실전적으로 쓸 수 있는 수준의 핵 기술을 확보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南北 미사일, 분단 후 처음 NLL 넘어…9·19 군사합의, 사실상 무용지물
북한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을 북방한계선(NLL) 이남으로 쏜 것은 결국 ‘핵보유국’을 목표로 한 김정은 정권의 로드맵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북한이 서울 이태원 참사로 국가 애도 기간인 2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미연합공중훈련 ‘비질런트스톰’을 빌미로 무력 도발을 감행하면서 6년 만에 울릉군에 공습경보까지 내려졌다. 우리 군도 즉각 NLL 이북 공해상에 공대지미사일 3발을 발사하며 북한에 분명한 경고를 보내는 등 한반도 상황이 점차 강 대 강 대치로 흐르고 있다.
더욱이 이날 남북이 동해 NLL 이남과 이북으로 미사일을 주고받음에 따라 9·19 군사합의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군사합의는 동해 NLL을 기준으로 남북 각각 40㎞ 이내 해상에서는 포사격 등 적대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데 북한이 쏜 미사일과 우리 군의 대응 미사일 모두 완충구역에 떨어진 탓이다.
울릉도 옆에 떨어진 北 미사일…6년 만 공습경보
NLL 이남을 넘어온 문제의 SRBM은 오전 8시 51분께 강원도 원산 일대에서 발사한 3발 중 하나였다. 합동참모본부는 새벽 6시 51분께 평안북도 정주시와 피현군 일대에서도 네 발의 미상 항적을 포착했고 분석 결과 SRBM으로 평가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합참은 “북한이 9시 12분부터 함경남도 낙원·정평·신포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평안남도 온천·화진리와 황해남도 과일 일대에서 서해상으로 발사한 SRBM과 지대공미사일 등으로 추정되는 10여 발을 추가로 포착했다”고 밝혔다. 오후 1시 27분께는 강원도 고성군 일대에서 동해상 NLL 북방 해상 완충구역 내로 100여 발의 포병 사격도 감행했다. 합참은 “북한의 동해상 포병 사격은 명백한 9·19 군사합의 위반으로 도발 중단 등 경고 통신을 실시했다”고 전했다. 오후 4시 30분부터 5시 10분 사이에는 신포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온천 일대에서 서해상으로 지대공미사일 등으로 추정되는 6발을 추가로 발사했다.
북한은 6월 SRBM 8발을 섞어서 발사한 바 있는데 20발 이상 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여러 종류의 미사일을 섞어 발사하면 요격이 쉽지 않은 점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우리 군도 북한의 도발 수위에 맞춰 대응 사격을 실시했다. 공군은 오전 11시 10분부터 낮 12시 21분 사이 F 15K, KF 16의 정밀 공대지미사일 3발을 동해 NLL 이북 공해상에 발사했다. 우리 군이 쏜 미사일이 NLL을 넘어간 것 또한 분단 이후 이번이 처음이었다. 북한 미사일 1발이 NLL 이남에 떨어진 것을 감안하면 우리 군이 3배 수준의 대응을 했다는 게 합참의 설명이다.
합참은 “북한이 도발한 미사일의 낙탄 지역과 상응한 거리 해상에 정밀 사격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군 당국은 현재 북한이 발사한 SRBM의 정확한 사거리와 고도·속도 등의 제원을 분석하고 있다.
북한, 선제 위협 ‘말 폭탄’…핵 능력 자신감
무력 도발에 앞서 북한은 말 폭탄으로 위협을 가했다. 이틀 연속 담화를 통해 한미의 ‘비질런트스톰’ 훈련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북한은 전날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침략적 성격이 명백한 군사훈련”이라며 “미국이 계속 엄중한 군사적 도발을 가해오는 경우 보다 강화된 다음 단계 조치들을 고려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날은 박정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명의의 담화에서 “더 이상의 군사적 객기와 도발을 용납할 수는 없다”면서 “미국과 남조선이 우리에 대한 무력 사용을 기도한다면 가장 끔찍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며 무력 도발을 한미 군사훈련으로 돌렸다.
북한이 연이은 말 폭탄에 이어 무력 도발까지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는 것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핵무력에 대한 자신감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북한의 도발은 핵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라며 “이번 도발을 통해 ‘핵보유국 인정’이라는 절대 목표를 향해 좌고우면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무력 도발이 이보다 더 강해질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 분위기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동해 또는 서해상에서 남북한 간 무력 충돌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며 우려했다. 태 의원도 “(북한은) 한반도 긴장을 지속적으로 고조시킨 후 7차 핵실험으로 방점을 찍고 사실상 핵보유국의 위상을 갖고 미국과 담판에 나서려 한다”면서 “북한이 한국을 향해 전술핵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는 의지가 현실화되는 상황에서 기존 확장 억제로는 부족하다”며 억제 정책의 질적 변화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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