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기관 개혁 이슈가 떠오른 6월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세종청사 기자실을 찾아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자처했다. 한국전력공사의 재무 상황을 묻는 질문에 그는 평소 보기 힘든 강한 어조로 “한전이 왜 이 모양이 됐는지 자성이 필요하다”며 날을 세웠다. 적자 장부를 뜯어보면 정부가 원가를 한참 밑도는 전기요금을 강제한 탓이 큰데 한전의 방만 경영으로 화살을 돌렸다. 얼마 뒤 기재부는 재무 개선안을 내놓고 ‘자산 매각 등을 통해 5년간 14조 원을 확보하겠다’고 했지만 한전의 올해 예상 적자분인 30조 원의 반이 채 안 된다.
# 9월 전기요금 인상 여부를 논의하기 위해 관계 부처가 모처에 한데 모였다. 원료비가 천정부지로 치솟는데 요금을 이대로 묶어뒀다가는 한전의 올해 적자가 수십조 원으로 불어날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가 테이블에 올랐다. 한전이 자금난으로 회사채 무더기 발행에 나서면서 ‘돈맥 경화’가 심화될 것이라는 경고도 함께 담겼다. 하지만 기재부는 이 자리에서도 ‘요금 인상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보다 못한 대통령실이 나서 ‘찔끔 인상’으로 정부 입장을 정리하기 직전까지 기획재정부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 이달 3일 기재부 2차관 주재로 공공기관 운영위원회가 비공개로 열렸다. 한국가스공사 사장을 포함한 주요 공공기관 임원 선임 안건이 올랐다. 회의 결과 윤석열 대통령 캠프에서 활동했던 최연혜 전 국민의힘 의원이 신임 가스공사 사장으로 내정됐다. 그는 1차 사장 공모에서 ‘에너지 관련 이해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면접에 탈락했던 인물이다.
기재부가 조만간 인력 감축 계획을 담은 공공기관 혁신안을 내놓는다. 지난 정부에서 급증한 인력을 감안하면 더 미루기 어렵다. 다만 무슨 령(令)이 설까 싶다. 공공기관을 부채의 늪으로 밀어 넣은 왜곡된 가격 결정 체계는 손대지 않은 채 땜질만 해왔고 정치권 인사를 요직에 앉히며 낙하산 시비를 자초했다. 인력 조정 수위가 클수록 직원에게만 고통을 떠미는 모양새다. 공공기관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 자성이 필요한 곳은 ‘영혼이 없던’ 기재부 아닐까.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