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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가정보 요청·납품가 인하 모두 불법…이대론 산업계 대혼란

◆납품단가 연동제 부작용 우려

객관적 원가정보 받지도 못한 채

위탁 대기업 '깜깜이 계약' 할 판

中企 도덕적 해이 이어질 가능성

원자재값 꺾여도 인하 요구 못해

예외범위 지나치게 협소해 문제

WTO '차별금지'에 위배 소지도


여야가 추진하는 납품단가연동제가 국회 문턱을 넘을 경우 대혼란이 예상된다. 현행법과의 충돌 가능성 등 부작용이 너무 커서다. 통상 위탁 기업이 되는 대기업은 중소기업에 원가 정보를 요청하지 못해 중소기업이 요구하는 대로 단가 계약을 체결해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 제대로 된 ‘납품단가 연동’이 되려면 원자재 가격이 하락했을 때 단가 역시 낮춰야 하지만 대기업은 현행법상 이를 청구할 수 없는 점도 문제다.





4일 대한상공회의소 등에 따르면 위·수탁 기업 간 연동 계약을 협의할 때 위탁 기업이 원가 정보를 요청하면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협력법)과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상 ‘경영정보 요구 금지’ 위반에 해당한다. 현재 국회에 계류된 납품단가연동제 법안은 연동제가 적용되는 원자재를 ‘납품 대금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0% 이상인 주요 원재료’로 규정해 그 비중을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위탁 기업 입장에서는 객관적인 원가 정보도 없이 ‘깜깜이 계약’을 체결할 수도 있는 셈이다.

이는 결국 중소기업의 도덕적 해이와 생산성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조인숙 연세대 경제학 교수는 “위탁 기업과 수탁 기업은 부품 발주와 납품 사이 발생하는 시장 환경 변화 등 다양한 위험을 계약을 통해 공유하지만 통상 위탁 기업은 수탁 기업의 비용 관련 정보가 부족하다”며 “납품단가연동제가 도입되면 수탁 기업이 비용 인상 요인을 위탁 기업에 떠넘기고 생산비 절감을 위한 경영 혁신을 소홀히 하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납품단가연동제가 원자재 가격 변동에 따라 단가를 내리지는 못하고 올리기만 하는 제도로 변질될 가능성도 높다.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위탁 기업이 “단가를 내려 달라”고 요청하면 하도급법상 ‘감액 금지 규정’ 위반이 될 수 있어서다. 하도급법은 “원사업자가 정당한 사유를 입증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제조 등을 위탁할 때 정한 하도급 대금을 감액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공정위 관계자는 “납품단가연동제를 바탕으로 합의된 계약 조건에 따라 단가를 감액하는 경우는 ‘정당한 이유’에 해당하는 만큼 하도급법 위반이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위·수탁 기업 간 합의에 따라 납품단가연동제를 도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예외 조항 등으로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여야 합의 법안은 △위탁 기업이 소기업 △납품 대금 1억 원 이하 소액 계약 △계약 기간 90일 이내 단기 계약 △계약 쌍방이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연동하지 않기로 합의한 경우 납품단가연동제를 적용하지 않도록 했다. 하지만 재계 관계자는 “예외조항의 범위가 협소해 거의 모든 거래가 연동제의 대상이 될 것”이라며 “예외 적용 범위를 대폭 확대하거나 현실을 신속히 반영할 수 있도록 구체적 수치를 시행령에 위임해 법 적용을 유연하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납품단가연동제 시행이 통상 마찰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연동제에 따라 국내 기업이 하청 계약을 맺을 때만 대금을 인상해주면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의 ‘내국민 대우 조항’에 위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을 내국인과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이 규정에 따르면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국은 국내 기업과 외국 기업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

납품단가연동제가 국내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과 국내 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준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원자재 가격이 10% 상승했다고 가정하고 이를 납품단가에 반영하면 국내 중소기업 제품에 대한 대기업 수요가 1.45% 감소하는 반면 해외 중소기업 수요는 1.21% 증가한다고 추정했다. 한경연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생산이 동시에 감소해 총 4만 7000명의 일자리가 줄고 실업률은 0.2%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추산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연동제의 문제점을 충분히 사전 검토하지 않고 법안을 시행할 경우 규제의 불가역성으로 부작용이 발생해도 되돌릴 수 없다”며 “9월부터 361개 대·중소기업이 참여하는 시범 사업이 종료된 후 그 결과를 바탕으로 법제화를 추진해도 늦지 않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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