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를 사상 두 번째 ‘원정 월드컵 16강’으로 이끈 파울루 벤투(53·포르투갈) 대표팀 감독이 4년 4개월간 동행한 태극전사들과 다정한 작별을 고하고 있다.
벤투 감독과 선수단은 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다. 축구협회는 귀국 직후 인천공항에서 대한축구협회가 마련한 간단한 환영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벤투 감독은 대회를 치른 소감과 함께 대표팀을 떠나는 소회를 밝힐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벤투 감독은 2022 카타르 월드컵 일정을 마친 한국 선수단 중 곧바로 소속팀으로 돌아가는 미드필더 정우영(32·카타르 알사드)과 골키퍼 김승규(32·사우디아라비아 알샤바브), 미드필더 정우영(23·독일 프라이부르크)과는 6일 현지서 작별 인사를 나눴다.
벤투 감독은 포르투갈 대표팀 선수 시절 자신의 등번호였던 17번이 새겨진 한국 대표팀 유니폼을 미리 준비해 세 선수의 사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벤투 감독은 해당 유니폼에 대표팀 선수 전원의 사인을 받아 간직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김승규는 벤투 감독과의 인사 도중 눈물을 터뜨리기도 했다.
벤투 감독을 포함한 선수단은 항공편이 여의치 않아 둘로 나뉘어 귀국한다.
벤투 감독과 세르지우 코스타 수석코치, 대표팀 주장 손흥민(30·토트넘) 등 10명은 도하에서 출발하는 직항편으로 이동하고, 코치 5명과 선수 14명은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를 경유하게 된다.
벤투 감독은 전날 브라질과의 경기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국 대표팀 감독직 재계약을 안 하기로 했다”며 “선수들과 대한축구협회 회장에게 내 결정을 말했다. 결정은 이미 지난 9월에 이뤄졌다”고 밝혔다.
재계약이 불발된 배경에는 ‘계약기간’을 놓고 축구협회와 이견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벤투 감독은 4년 뒤 2026년 월드컵까지 계약기간을 보장해주길 희망했으나, 협회는 일단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까지만 재계약한 뒤 성적에 따라 기간을 연장하는 방안을 제시해 양측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벤투 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이뤄낸 것에 대해 고맙다. 그동안 한국 대표팀을 이끌 수 있어서 매우 자랑스럽다”며 “선수들은 나와 4년 4개월 동안 동고동락하면서 정말 훌륭한 실력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한국 대표팀에 대해 “함께 일했던 선수들 중 최고였고 인격적으로도 매우 훌륭했다”면서 “한국 축구 사상 세 번째 16강을 이뤄낸 사실이 기쁘고 자랑스럽다. 한국 대표팀을 이끈 경험을 평생 기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8년 8월 지휘봉을 잡은 벤투 감독은 취임 직후 본인만의 뚜렷한 축구 철학으로 한국 축구의 체질을 바꾸려 했다. ‘선 수비, 후 역습’으로 승부를 거는 기존 한국 축구와 달리 패스워크를 바탕으로 공 점유율을 높이며 경기를 주도하는 ‘빌드업 축구’를 구사했다. 주도하지 않고 대응하기만 하는 소극적인 축구로는 월드컵에서 성과를 낼 수 없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축구에 맞지 않는 전술’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벤투 감독은 흔들리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벤투 감독의 지도 아래 10차전까지 치른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8경기 만에 본선행을 확정하는 등 역대 가장 안정적인 전력으로 본선에 올랐다.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이어 한국 축구 역사상 외국인 사령탑으로 유일하게 원정 16강 진출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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