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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보톡스, 치료제 그리고 한국

■맹준호 바이오부 차장

보툴리눔 톡신, 치료제로 무한성장

글로벌 시장 진출 보다 서둘러야





2002년 5월 정치권이 때아닌 ‘보톡스 논쟁'에 휩싸였다.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이던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당 워크숍에서 이마에 보톡스 시술을 받았다고 털어놓은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다. 유난히 깊고 진한 이마 주름을 옅어지게 만들려고 보톡스를 맞았는데 썩 마음에 들지 않아 중단했다는 게 당시 보도의 요지였다.

노 후보 반대 진영에서는 “서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이 거액의 미용 시술을 받느냐”며 강력 비판했다. 이에 노 후보 지지자들은 “대중 정치인이 피부과에서 보톡스 좀 맞은 것이 대체 뭐가 문제냐”고 맞섰다. 미용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보톡스가 유명해진 것은 당시 사건 이후가 아닐까 싶다.

사실 보톡스(Botox)는 미국 제약사 엘러간(현 애브비)이 만든 보툴리눔 톡신 제제의 상표명이다. 널리 알려진대로 보툴리눔 톡신 제제는 보툴리눔이라는 균이 방출하는 맹독을 이용해서 만든다. 이 독은 운동 신경과 근육이 만나는 곳에서 신경 전달 물질인 아세틸콜린의 분비를 막아 근육 마비를 초래한다. 보툴리눔 균을 배양해 독을 얻고 이를 희석시켜 주사제로 만든 것이 흔히 보톡스로 부르는 보툴리눔 제제다.



현재 보툴리눔 톡신 제제는 미용 시술 용도로 가장 많이 쓰이고 있지만 세계 의약계는 이 약의 무궁무진한 치료 용도에 주목하고 있다. 사시, 편두통, 빈뇨, 눈꺼풀 떨림 등 근육의 움직임이나 경직과 관련된 여러 병증을 완화하는 데 보톡스가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글로벌 기업인 애브비의 보톡스는 손과 팔 경직(2010년), 만성 편두통(2010년), 요실금(2011년), 과민성 방광(2013년), 소아 배뇨근 과행동(2021년) 등 적응증에 대해 미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으며 치료용 의약품으로 시장을 넓혀 나가고 있다. 미국에서는 추가적인 치료 효과를 확인하기 위한 임상 시험도 진행되고 있다. 특히 부정맥, 조루증 등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근육(불수의근)과 관련된 수많은 병증에 적용하기 위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심지어 우울증과 치매에도 보툴리눔 톡신 제제를 활용하는 방법을 테스트하고 있다.

세계 보툴리눔 톡신 시장은 2021년 약 7조 3000억 원에서 연평균 10% 이상 성장해 2030년 약 20조 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때 쯤에는 치료용과 미용용의 비중이 반반이 될 것이라는 게 의약품 시장조사 전문기관들의 예측이다. 현재 글로벌 시장은 애브비가 65%, 프랑스 입센이 20%, 독일 멀츠가 10% 씩을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보톡스는 ‘제록스’나 ‘포스트잇’처럼 상표명이 보통명사화했을 정도로 시장 영향력이 압도적이다.

한국은 보툴리눔 톡신 분야에서 가장 잠재력이 큰 나라다. 무려 9개사가 제품을 만들고 있고, 임상시험을 하고 있는 곳을 포함하면 20여 개 기업이 보툴리눔 균을 다루고 있다. 종합하자면 보툴리눔 톡신은 치료 적용 범위가 크게 확대될 수 있고 수개월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투약해야 해 시장성이 큰데, 한국은 여러 회사가 품질 좋고 저렴한 제품을 다양하게 만들고 있어 세계 시장 침투 여건이 매우 좋다.

현재 국내 업계는 보툴리늄 균을 어디서 얻었느냐를 놓고 사생결단의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다. 소송이 끝나도 상처는 오래 갈테지만 각자가 거대 시장을 향해 부지런히 나아가야 한다. 한국 보툴리눔 톡신 제제가 언젠가 이 약의 대명사인 미국 보톡스를 꺾는다면 K바이오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의 성공 신화를 다시 한번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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