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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 “反지성주의·집단주의 부추기는 팬덤정치…민주주의 위기 증폭”

◆이현출 팬덤·민주주의특위 위원장(건국대 교수)

팬덤정치는 편가르기로 대립 증폭, 국민통합 걸림돌

과잉 대표성, 의사표현 봉쇄로 대화·토론·타협 불가능

巨野 입법 폭주·극단적 여야 대결정치 현실로 나타나

당내민주주의 왜곡, 공당 벗어나 사당(私黨)화 부추겨

이현출 국민통합위원회 '팬덤과민주주의특별위원회' 위원장이 1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대화와 토론을 거부하는 팬덤 정치는 민주주의 위기를 초래한다"며 "정치권이 스스로 정치 분열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최근 특정 정치인·정당의 극단적 지지층이 주도하는 ‘팬덤(fandom) 정치’가 한국 정치와 정당 민주주의의 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다. 이른바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국론이 두 동강 나고 ‘문빠(문재인 극성 지지층)’와 ‘개딸(이재명 극성 지지층)’ 등이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들에게 무차별 공격을 가해 대립을 조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현출 국민통합위원회 ‘팬덤과민주주의특별위원회’ 위원장은 1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팬덤 현상으로 민주주의의 근간인 대화와 토론·타협이 어려워져 국민 통합이 힘들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팬덤 정치는 집단주의를 부추겨 진실을 왜곡할 뿐 아니라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반(反)지성주의로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린다”고 말했다.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인 이 위원장은 “정당은 물론 시민사회 단체도 건강한 민주주의를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며 “유권자들도 디지털 시대에 맞는 시민적 덕성을 갖춰 정치 양극화 문제 해소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팬덤 정치가 우리 정치를 퇴보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팬덤 정치는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열렬하게 지지하는 집단의 정치적 행위와 집합적 결과이다. 긍정적 측면은 유권자의 정치적 관심을 촉진하고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팬덤 현상은 편 가르기 형태의 집단주의 문화를 확산시켜 다원주의를 훼손한다. 또 민주주의의 기본인 토론과 타협을 거부해 국민 통합을 어렵게 한다.

-국민들은 이 현상을 어떻게 바라본다고 생각하는가.

△특정 단체의 목소리가 침묵하는 다수의 중도를 대체하는 과잉 대표성과 여론 왜곡 문제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정치학회가 지난해 11월 실시한 전국 성인 대상의 ‘정치인 팬클럽에 대한 시민의식’ 조사 결과 응답자의 24.8%가 팬덤 정치에 대해 열성과 적극성을 갖고 지지하는 시민 참여 방식이라고 긍정 평가했다. 반면 46.2%는 맹목적이고 정파적이어서 국론 분열을 연상시킨다고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극단적 지지층이 자신들이 추종하는 특정 정치인에게 반하는 언행을 하는 정치인에게 문자 폭탄을 보내는 등 거세게 공격하기도 하는데.

△극단적 팬덤의 대표적 사례다.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의 의사 표출 자체를 봉쇄하기 때문에 과잉 대표성의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저지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다. 특히 이 같은 행동은 당내 극단적 소수의 목소리가 당을 지배해 정당 간 타협의 여지를 좁히고 대화와 타협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 때문에 정치적 무관심층과 불신층이 늘어나고 중도층의 마음을 잡기 위한 정책 경쟁도 어렵게 하는 폐해를 낳는다.

-이 같은 공격에도 침묵하고 외면하는 정치인이 많다.

△이른바 ‘좌표’를 찍혀 전화나 문자 폭탄을 받고 조리돌림을 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일부를 제외하고 정치인의 신념이나 가치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요즘 정치의 현주소다. 오늘날 한국 정치에 다선 의원은 있지만 정치적 어른이 없고 초선은 있지만 소장파 의원이 없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팬덤의 혜택을 보는 정치인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과거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지자들이 극렬하게 반대하더라도 욕 먹을 각오를 하고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사면, 김대중·오부치 선언(일본 문화 개방), 이라크 파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대연정 제안 등의 결단을 내렸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바람직하고 나라 살림에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경우 당선된 뒤 ‘노사모’ 간부들을 청와대에 불러 노사모 해체를 당부했다. 팬덤 정치의 혜택을 보는 정치인이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기술 발달이 팬덤 정치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다.

△소셜미디어(SNS)가 가짜 뉴스와 결합해 공론장을 파고들고 있다. 사람들은 동일한 신념이나 당파성을 중심으로 선택적 정보 이용 행태를 보이면서 자신들의 성향과 부합하는 가짜 뉴스를 접하게 된다. 개인이 특정 콘텐츠를 이용하면 페이스북과 유튜브 등의 알고리즘은 비슷한 내용이 담긴 콘텐츠 이용을 추천하기 때문이다. 또 SNS를 통한 확증 편향의 정보 이용 행태는 정치적 차이에 대한 무관용과 정치 양극화를 조장한다. 특히 SNS를 통한 단발적 쇼츠 등으로 맥락이나 기조보다는 순간적 말실수 등을 신속히 전파해 진영의 결속이 강화되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가짜 뉴스가 팬덤 정치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연구에 따르면 가짜 뉴스는 진짜 뉴스보다 6배 더 빨리, 더 깊게, 더 멀리 퍼진다고 한다. 이같이 빠른 속도로 전파되는 가짜 뉴스가 오늘날의 팬덤과 결합하면 확증 편향을 증폭시켜 공격성을 부추길 수 있다. ‘청담동 술자리’ 의혹은 거짓으로 판명됐지만 아직도 야권 지지층의 70%는 사실로 믿는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거대 야당의 입법 폭주로 여야의 대화와 타협·관용이 사라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팬덤의 후유증인가.

△우리 정치에서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정당들이 정책적 일관성을 유지하면 극단적인 목소리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극단적 지지층이 특정 법안을 열성적으로 지지하면 정당은 무리한 입법을 강행해야 한다는 유혹을 받게 된다. 복합 위기 국면에서 국가적으로 어떤 것이 이로운지, 국가의 미래 비전을 어떻게 마련할지 고민하지 않으면서 빚어지는 현상이다. 민주주의에서 참여와 토론·숙의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오류에 빠진 셈이다.

-팬덤 정치가 한국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

△소수의 극단적 팬덤이 대화와 타협을 통한 합의 도출이라는 대의 민주주의 전 과정을 압도하면서 민주주의의 형해화를 초래할 우려가 크다. 특히 당내 민주주의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쳐 결국 정당이 사당화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점이 걱정된다.

-팬덤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자정 노력을 제도화할 방안은 없는가.

△온라인 투표 수준에 머물고 있는 당원 참여를 당직과 공직선출권 보장 등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다양한 형태의 정당 내 플랫폼을 만들어 당원 참여를 당내로 흡수하는 방안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영국 보수당과 노동당 등 외국의 많은 정당들이 디지털 윤리규범을 만들어 자정 노력을 의무화하고 SNS 활용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 특위도 정당 차원에서 참고할 ‘디지털윤리규범’ 시안을 마련해 제시할 계획이다. 정당과 정치인들이 표현의 자유 등 헌법의 기본 가치 구현과 당내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적극 나서야 할 때다. 팬덤 정치는 지금 당장 달콤함을 줄 수는 있어도 결국 정당 민주주의를 해치는 위협 요인이 될 수 있다.

-유권자들의 자정 노력도 필요할 것 같다.

△시민사회 단체의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하다. 특위에서도 ‘디지털시민선언’ 등을 준비하고 있다. 또 기존 팬덤 정치의 행태를 벗어나 건강한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디지털 시민성 확립을 위한 포럼 구성을 제안할 예정이다. 미국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후보와 힐러리 클린턴 후보 간 대통령 선거 대결 이후 공화당 지지자와 민주당 지지자의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그런데 민간 차원에서 ‘브레이버에인절스(Braver Angels·더 용감한 천사)’라는 단체가 등장해 양극화된 정치 지형에서 가교 역할을 시도하고 있다. 우리도 시민사회에서 팬덤 정치 문화를 완화할 수 있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또 유권자들도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시민적 덕성을 갖추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가짜 뉴스가 팬덤 현상을 가속하는 것을 막을 방안은 없는가.

△독일은 2018년 1월부터 SNS 사업자가 24시간 내에 가짜 뉴스를 삭제하도록 하고 위반 시 500만 유로(약 67억 원)의 질서위반금을 부과하는 ‘사회관계망에서의 법 집행 개선을 위한 법률’을 시행하고 있다. 가짜 뉴스나 혐오 공격 등을 플랫폼 기업의 자율 규제에만 맡길 수는 없다고 판단해 기업에 규제 의무를 부과한 셈이다. 우리나라도 SNS 등이 가짜 뉴스의 통로로 활용되는 만큼 이들을 규제의 틀로 끌어들여 책임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최종 보고서에 담을 예정이다.

-최근 이 주제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했는데 성과와 향후 계획을 말해달라.

△팬덤 현상이 심각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적은 많지 않다. 특히 한국 사회의 팬덤 현상은 야구에 비유하자면 이미 9회 말을 지나고 있는데 학자와 전문가들의 이해와 연구는 아직 3회 말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학회와 공동 개최한 세미나의 논의 결과와 검토 내용을 바탕으로 3월 중 극단적 정치 팬덤의 문제를 개선하고 긍정적인 팬덤을 강화할 수 있는 정책 제언을 발표할 계획이다.

◆He is…

1964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건국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오사카시립대 객원연구원을 거쳐 2012년 국회 입법조사처 정치행정조사심의관 등을 지냈다. 제1대 한국지방의회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해부터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 내 ‘팬덤과민주주의특별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돼 특위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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