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직원이 공장에서 TV·디스플레이를 생산하는 것부터 배우던 시절에는 연공형 임금체계가 타당했지만, 사업 기반이 제조에서 디지털로 바뀌면서 직원들이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제안해야 하는 시대에는 그 모델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고(故) 나카니시 히로아키 전 히타치제작소 회장이 2020년 한 인터뷰에서 밝힌 연공형 임금체계에 대한 소신이다. 전통적인 제조 기업이었던 히타치제작소를 디지털 솔루션 기업으로 변화시킨 나카니시 전 회장의 이러한 발언은 급격한 산업 환경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연공형 임금체계를 붙들고 있는 우리에게 임금체계 개편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환기시켜준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기술 변화가 가속화되고 새로운 산업 환경이 형성되는 ‘넥스트 노멀(Next Normal)’ 시대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많은 산업들이 디지털 인프라 위에 새롭게 세워지면서 파괴적 혁신이 산업 생태계를 뒤흔들고 있고 이는 기업들에 구성원의 창의와 혁신을 강화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기업들은 뿌리 깊은 연공의 벽에 가로막혀 우수 인재를 유치하고 이들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임금 결정 기준을 근속연수에 중점을 둔 연공형 임금체계로는 직원들에게 창의와 혁신을 위한 동기부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연공형 임금체계의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일의 가치와 성과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비합리적인 임금체계가 노동시장 내 차별 문제의 핵심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고 60세 정년 의무화 시대에 청년고용을 심각하게 제약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이 가시적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면 고용 연장은 논의조차 무의미하다.
사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인식하에 2013년 정년 60세 입법 당시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의무화했고 노동계도 이에 합의한 바 있다. 그럼에도 임금체계 개편이 10년이 지난 아직까지 부진한 주된 이유는 근로자와 노조가 근속연수에 따라 자동적으로 임금이 인상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대다수 기업들이 노조의 반발을 우려해 임금체계 개편을 시도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 합리적인 임금체계 개편에 노조가 호응하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이러한 모습이 보편화되기는 아직 요원해 보인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할 때 이제는 2007년 일본의 경우처럼 사회 통념상 합리성을 갖춘 임금체계 개편은 노사 협의만으로도 가능하도록 법제도부터 개선해 기업들이 하루빨리 직무와 성과에 기반한 임금체계로 바꿀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 정부는 민간의 자유와 창의를 최대한 존중하고 그 속에서 혁신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수차례 밝힌 바 있다. 올 2월 발족한 상생임금위원회가 이러한 정책 기조에 맞춰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 규제성 제도의 도입이 아닌, 시장의 자율적인 임금 조정 기능을 존중하면서 기업들이 능동적으로 임금체계와 이중구조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할 것으로 기대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