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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2023 주총, 행동주의를 기억하라

손철 시그널·증권부장





2023년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막을 내렸다. 주요 상장사들이 자사주 매입·소각 계획을 밝히고 주주 환원을 확대해 관심을 모았지만 올해 주총에서 최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행동주의 펀드였다. 얼라인파트너스·트러스톤자산운용·플래시라이트캐피털(FCP) 등 행동주의 펀드가 배당 확대와 사외이사 선임 등을 놓고 투자 기업들과 대립각을 세우자 해당 기업 주주뿐 아니라 시장 참여자들이 주총 표 대결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결과만 놓고 보면 행동주의 펀드가 무릎을 꿇었다. 얼라인은 JB금융지주에 현금 배당 확대를 제안했지만 부결됐다. 트러스톤운용은 태광산업과 BYC에 주식분할, 배당 확대 등 다양한 제안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FCP 역시 KT&G에 자사주 매입·소각, 사외이사 선임 등을 놓고 회사 측과 격돌했지만 패했다.

그러나 표 대결의 승패가 아니라 그 내용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올해 주총은 한국 행동주의 투자의 한 획을 그은 기념비적인 해로 기억할 만하다. 우선 SM엔터테인먼트(에스엠) 설립자인 이수만 전 총괄프로듀서가 ‘한 시대를 마감한다’는 표현을 써가며 자신의 이름을 딴 SM을 본인 뜻과 무관하게 카카오에 넘겼는데 이를 이끈 것은 단연 얼라인의 30대 창업자인 이창환 대표였다. 이 대표는 이 전 총괄의 전횡이 SM 주가가 저평가된 주된 이유로 보고 2021년 SM에 뭉칫돈을 투자한 후 이를 개선하려 애썼다. 그의 말처럼 2년 전을 돌아보면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할 만큼 무모한 도전이었다.

특히 이 대표와 연합한 카카오가 SM 지분을 공개 매수하며 주당 인수가를 이 전 총괄이 경영권 프리미엄을 누리며 하이브에 판 가격보다 높게 설정할 수밖에 없도록 한 것은 소액주주들 입장에서 보면 한국 인수합병(M&A)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진전으로 평가할 만하다. 얼라인은 또 JB금융에서는 실패했지만 KB금융과 우리금융 등 주요 금융지주사에 선제적으로 배당 확대를 요구해 관철시키기도 했다.



FCP가 KT&G에 낸 주주 제안들은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회사 측 손을 들어줘 모두 부결됐지만 KT&G 경영진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FCP는 앞으로 2년 이상 주주로 남아 올해 주총에 제안한 이슈들을 계속 제기하며 경영 감시와 견제를 강화할 계획이다.

트러스톤운용이 주총에서 분루를 삼켜야 했던 태광산업과 BYC는 대주주와 특수관계인들의 지분율이 높아 애초부터 주주 제안이 관철될 확률은 낮았다. 하지만 트러스톤운용이 환기한 태광산업과 BYC 오너들의 독단적 경영 행태는 주주들은 물론 여론의 질타 대상이 돼 기존 관행의 적잖은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더욱이 트러스톤운용의 문제 제기로 검찰과 국세청 등 사정 당국이 태광산업과 BYC 대주주들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태광과 BYC가 투명 경영을 게을리하면 내년 주총 이전이라도 사달이 날 수 있다.

한국 행동주의 펀드의 약진은 운용사 경영진의 실력과 이를 독려하는 기관투자가의 자본력,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개선을 바라는 개미 투자자의 지지가 합쳐진 구조적 결과물이다. 그래서 앞으로 세력이 더 커지면 커졌지 쇠퇴할 가능성은 낮다. 무엇보다 SK 경영권을 노렸던 소버린이나 삼성물산을 흔들던 엘리엇과 달리 한국의 투자 전문가들이 행동주의 전략을 이끌며 장기 투자자로 포진해 여론의 지지가 높은 편이다. 미국·영국 등 자본시장 선진국에서 행동주의 펀드는 보편화된 플레이어(player)여서 골드만삭스가 올해 주총을 앞두고 한국에서 행동주의가 활성화하는 데 대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호응하기도 했다.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과 자본시장 혁신의 메기가 될 행동주의 펀드의 시대가 열렸다. 아직도 이들을 마냥 외면하며 무시하는 기업인이 있다면 큰코다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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