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편식이 일반 가정 주방을 넘어 외식업체 조리실까지 침투하고 있다. 엔데믹을 기점으로 손님이 급증한 반면 주방 일손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봉지를 뜯기만 하면 바로 조리가 가능한 간편식을 사용하는 호텔이나 리조트, 음식점이 늘고 있어서다. 냉동면이나 치킨은 물론 학교 급식실에는 '30인분 떡볶이 밀키트'가 등장했을 정도다. 간편식 영역이 기업 간 거래(B2B)까지 확대되자 식자재 유통 업체들도 새로운 시장이 커진다는 점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1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호텔 결혼식이나 뷔페, 급식, 주점 등 외식 전문점에 냉동 간편식을 납품하는 업체들은 호실적을 기록했다. 대표적인 곳이 사세(윙·봉), 면사랑(면), 천일식품(볶음밥) 등의 업체다. 이들은 호텔 업계에서 이른바 '냉동 삼형제'로 불릴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치킨 가공품 B2B 시장점유율 60%로 1위인 사세 매출은 27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22% 성장했다. 사세 관계자는 "코로나 영향력이 감소해 호텔, 리조트나 외식 프랜차이즈 중심으로 매출이 회복세를 보였다"고 말했다. 우동이나 국수 재료인 냉동면을 납품하는 면사랑 매출은 1400억 원으로 20% 늘었다. 냉동 볶음밥 1위인 천일식품 매출 역시 17% 증가한 1003억 원을 기록했다.
평판을 중요시하는 호텔이나 고급 음식점에서 냉동 간편식을 사용하는 건 '금기 사항'이다. 그러나 치솟은 인건비 탓에 인력난이 심해지자 백기를 드는 곳이 많아졌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펜데믹 기간 배달이나 물류센터 등 플랫폼에 노동력이 몰린 것도 영향을 미쳤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외식업체 월평균 근로자 수는 2.85명으로 전년 대비 2.7% 감소했다. 그중 아르바이트 격인 임시직과 일용직 수는 각각 6.4%, 12.5% 줄었다. 한 리조트 관계자는 "채소를 다듬는 일명 '주방 막내'를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며 "일식이나 중식 등 주요리는 심혈을 기울이되 볶음밥이나 면류 등 간편 요리는 간편식을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이에 힘입어 식자재 유통 시장도 활기를 띠고 있다. 외식업장에서 발주하는 종류가 일반 채소나 소스 등에서 간편식으로 확대되며 매출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CJ프레시웨이(051500)에 따르면 지난해 호텔·리조트 식자재 매출은 전년 대비 43% 증가했다. 현대그린푸드(453340)에서도 올 1분기 같은 분야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9% 늘었다. 아워홈의 경우 지난해 리조트·골프장 식자재 매출이 코로나 이전인 2019년을 뛰어넘었다. 단골 주문은 손이 많이 가는 '깐 양파 10㎏'다. 업계 관계자는 "인력난에 미리 손질 된 농산물 뿐 아니라 쉽게 조리할 수 있는 대용량 조리 편의식 샘플을 요청하는 곳이 부쩍 늘었다"고 설명했다.
연구개발(R&D)을 통해 '간편식은 맛이 없다'는 편견을 깬 것도 주효했다. CJ프레시웨이는 학교 급식 전문 영업 인력과 사내 요리사를 투입해 30인분 대용량 '로제 떡볶이 밀키트'를 개발하고 학교 급식에 유통하고 있다. 업무 강도가 센 단체 급식은 구인대란이 벌어지는 곳 중 하나로 꼽힌다. 반면 사세와 면사랑, 천일식품 등은 오래된 업력과 급속냉동 기술을 내세워 식자재 마트나 e커머스를 위주로 입점해 소비자 간 거래(B2C)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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