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년을 맞이하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에 대한 내부 직원들의 평가가 공개됐다. 한은 직원들은 이 총재가 실시한 물가·금융안정 정책이 시의적절했다고 평가하면서도 처우 개선 등 내부경영은 대체로 낙제점을 매겼다. 특히 기획재정부가 한은 직원 인건비를 결정하는 구조를 바꿀 수 있도록 적극적인 한은법 개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18일 한은 노조는 이달 3일부터 13일까지 조합원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노조 설문조사에 이 정도로 많은 인원이 참여한 것은 이례적이다.
먼저 직원들은 이 총재 재임 1년 동안 내부경영에 대한 평가를 묻자 40%가 보통이라고 답변했다. 못함(32%)과 매우못함(14%)을 합치면 46%가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 잘함(12%)과 매우잘함(2%) 등 긍정적 평가는 14%에 그친다.
반면 업무실적에 대한 점수는 보통이 50%로 절반을 차지했고 잘함(36%)과 매우잘함(4%)이 40%로 내부경영에 대한 질문과는 정반대 결과가 나왔다. 직원들은 금리 인상 등 물가안정 노력과 금융시장 안정화정책 등 금융안정 노력에 대해서도 시의적절했다는 답변이 각각 84%일 정도로 정책적으로는 우호적으로 평가했다.
직원들이 가장 크게 실망한 것은 처우 개선이다. 이 총재는 취임사를 통해 “직원들이 맡은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도록 그에 맞는 적절한 보상이 필요하다”, “한은을 국내 최고의 싱크탱크로 발전시켜나갈 계획이고 직원들의 처우도 이에 걸맞은 수준이 적절하다”라고 하는 등 급여 개선을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응답에 참여한 한은 직원 10명 중 9명 이상은 처우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총재 취임 후 급여수준이 적정 수준으로 회복됐냐는 질문에 48%가 그렇지 않다, 45%가 매우 그렇지 않다를 골랐다. 직원들은 한은의 적정 급여 수준을 금융공기업·시중은행 평균(34%), 금융공기업 평균(32%) 정도로 희망하고 있다.
유희준 한은 노조위원장은 “한은 경영층은 직원들에게 ‘한국경제의 컨트롤타워’급 능력을 요구하지만 임금 수준은 금융공기업 바닥을 강요한다”라며 “오죽하면 조사에서 직원들이 요구하는 급여 수준이 ‘금융공기업 평균’ 정도겠냐”라고 말했다.
문제는 한은 직원들의 처우 개선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은법 98조에 따라 한은은 급여성 경비 등에 대해서는 기획재정부 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규정돼 있다. 사실상 기재부가 한은 직원들의 인건비를 결정하는 구조로 수년 동안 낮은 임금 상승률이 책정되면서 한은은 산업은행 등 다른 금융공기업과의 임금 격차가 크게 벌어진 상태다.
노조는 독립적인 중앙은행 직원 인건비를 정부 부처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곳이 세계 어디에도 없다며 한은법 개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특히 새로 임명되는 박춘섭 금융통화위원회에 대한 반대 목소리도 덧붙였다. 박 신임 금통위원이 거시경제와 관련해 뚜렷한 행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과거 조달청장으로 재임하던 당시 통합별관건축 입찰 논란이 불거지면서 한은이 400억 원 이상 손실을 부담하게 됐다는 것이다.
유 위원장은 “헌법에서 보장한 정상적인 노사교섭을 형해화하는 기재부의 일방적 임금 결정을 언제까지 묵과해야 하냐”며 “이 총재가 한은 직원 인건비는 노사협상을 통해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결정할 수 있도록 한은법 개정에 적극 나서달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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