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 국제 시세가 치솟으며 국내 물가 상승 불안감이 또다시 고조되고 있다. 설탕은 일상생활에서 섭취하는 대부분 식품에 들어가는 조미료로, 값이 뛰면 뛸수록 빵과 아이스크림 등 가공식품은 물론 외식 물가 전반을 끌어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부 자영업자들은 설탕값이 더 뛸 것으로 보고 창고에 물량을 미리 쌓아두는 등 벌써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18일 A 대형마트에 따르면 지난 15~16일 설탕 판매량은 전월 동요일(3월 18~19일)대비 27% 증가했다. 같은 기간 G마켓에서도 설탕 매출이 64% 뛰었다. 관련 업계는 캠핑 등 야외활동이 많아지며 설탕 수요가 높아진데다, 설탕값이 오르기 전 미리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이 늘어난 데 따른 현상으로 보고 있다. G마켓 관계자는 "최근 세계 설탕 가격지수 상승의 여파로 일반 소비자나 기업 간 거래(B2B) 고객을 중심으로 설탕을 미리 구매하는 수요가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2020년 79.5에 불과했던 세계 설탕 가격지수는 2022년 114.5로 뛰었고, 지난달에는 127.0을 기록했다. 가격지수는 2014∼2016년 평균 가격을 100으로 두고 비교해 나타낸 수치다. 이는 설탕의 원료인 원당이 비싸진 결과다. 미국 ICE선물거래소에서 원당 선물 가격은 17일(현지시각) 파운드당 24.44센트에 마감했다. 이는 2011년 7월 이후 12년래 최고치다. 이상 기온에 원당 최대 생산국인 브라질의 생산량이 줄었고, 2위인 인도마저 원당 수출을 규제하며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부족해진 데 따른 영향이다.
국제 설탕 가격이 들썩이자 국내 식품 업체들은 '초긴장' 상태다. 설탕 가격이 물가 상승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선 먼저 원당을 설탕으로 정제해 파는 제당 회사들이 가격을 올려야 한다. 대한제당(001790)·삼양사(145990)·CJ제일제당(097950) 등 제당 업체들은 현재 최소 6개월 이상의 재고 물량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올 하반기까지 국제 원당 시세가 높게 책정돼있으면 결국 마트에서 판매하거나 B2B로 납품하는 설탕 가격을 인상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제당업계 관계자는 "수입 원당 가격 상승이 원가에 반영되기까지 평균 6~8개월 정도 소요된다"며 "현재 부담이 커지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설탕 가격이 오르면 빵이나 아이스크림 등 가공식품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2%에 그쳤다. 이는 정부가 과자나 소주 등의 가격을 당분간 동결해 달라고 요청한 효과다. 롯데웰푸드(280360)가 이달 예정됐던 아이스크림과 과자류의 가격 인상 계획을 보류한 게 대표적이다. 이에 따라 올 하반기 릴레이 가격 인상 현상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설탕값이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빵과 한식, 카페 등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미 설탕 가격이 한 차례 올랐는데, 추가 인상 시 원가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CJ제일제당은 지난해 '백설 흰색 설탕(3㎏)' 가격을 6600원에서 7300원으로 10%가량 인상한 바 있다.
양봉업계도 직격탄을 맞았다. 수입산 설탕 가격이 크게 뛰었기 때문이다. 시중에 판매되는 꿀의 60%가량을 차지하는 사양꿀은 설탕을 먹인 꿀벌에서 얻는데, 이때 사료의 대부분을 수입산 설탕에 의존하고 있다. 기후 이변으로 지난해에만 국내에서 꿀벌 77만 마리가 사라져 생산량이 감소한 가운데 사룟값마저 뛰며 꿀 가격도 들썩이고 있다. 가격 비교 포털 에누리닷컴에 따르면 '산내들농원 아카시아 사양꿀(1㎏)'의 가격은 지난해 10월 1만 2900원에서 이달 1만 4400원으로 6개월 만에 11.6%나 올랐다. 한국양봉협회 관계자는 "사양꿀뿐만 아니라 천연꿀을 생산하기 위해 양봉하는 벌꿀도 11월부터 월동 기간 설탕을 사료로 먹이기 때문에 생산원가와 관리비가 모두 올랐다"며 어려움을 전했다.
해마다 계속되는 원재료 값 등락에 대체재 연구도 활발하다. 설탕의 경우 화학 감미료인 에리스리톨과 수크랄로스가 대표적이다. 대체 감미료는 설탕보다 절대적인 가격은 비싸지만, 비슷한 단맛을 내면서도 일정한 가격에 수급이 가능해 식품 업체들이 주목하고 있다. 롯데칠성(005300)음료의 경우 대체 감미료를 통해 제로 탄산 시장점유율을 2021년 44%에서 지난해 50%까지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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