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면 6월까지 미국 의회에서 타협이 이뤄지지 않으면 미국이 초유의 국가 디폴트(채무 불이행)에 빠지는 가운데 야당인 공화당이 부채한도를 늘리는 대신 조 바이든 대통령의 대표 정책을 폐기하는 내용의 자체 예산안을 발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즉각 “정신 나간 생각(wacko notions)”이라고 반발해 정치가 경제를 휘청거리게 만드는 이른바 ‘P(Politics·정치)의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이 여파로 금융시장에서 예상하는 미국의 국가 부도 확률은 10년래 최고치로 치솟았다.
19일(현지 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공화당 소속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은 이날 미국의 부채한도를 상향하는 조건으로 내년 연방정부 예산을 1300억 달러(약 170조 원) 삭감하는 2024회계연도 예산안을 공개했다. 최근 20년 연속 재정적자를 기록해온 미국은 국가부채가 법정 한도에 도달하면 의회에서 이 한도를 올려야 국가 부도를 피할 수 있다. 2021년 12월 법정 한도를 31조 달러로 상향했는데 이후 부채는 계속 불어나 이미 올 1월 한도에 도달했다. 현재 재무부가 특별 조치로 시간을 벌고 있지만 6~8월 의회에서 합의되지 않으면 디폴트를 맞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날 매카시 의장은 예산안에 내년 3월 31일까지 부채한도를 1조 5000억 달러 상향하는 내용을 담았다. 그 대신 2024회계연도 예산을 약 1300억 달러 줄여 2022회계연도 수준으로 되돌리고 향후 10년간 4조 5000억 달러의 지출을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구체적으로 바이든 대통령의 핵심 정책인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전기자동차 보조금 일부를 폐기하고 학자금 대출 탕감 등도 막을 계획이다. 매카시 의장은 이르면 다음 주 하원에 예산안을 상정할 예정이다. 공화당이 과반을 차지한 하원에서는 통과될 가능성이 높지만 민주당이 장악한 상원에서는 부결이 확실시된다. 다만 공화당은 하원에서 예산안이 통과되는 것만으로도 바이든 대통령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날 메릴랜드주를 방문한 바이든 대통령은 공화당을 부유층 정당으로 묘사하며 매카시 의장이 정치적 동기로 경제를 인질로 잡고 있다고 주장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동안 민주당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정책에 반대했음에도 부채 한도 증액만큼은 합의를 해줬다는 점을 강조하며 공화당도 조건 없이 증액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 정치권의 벼랑 끝 대치로 금융시장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19일 유로화 표시 미국 5년물 국채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50.26bp(1bp=0.01%포인트)로 50bp를 돌파하며 2012년 1월 이후 10년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미국 디폴트에 대한 보험 구입 비용으로 수치가 높을수록 디폴트 확률도 높다는 의미다. 최근 JP모건의 제이 배리 금리 부문 공동대표는 “미국의 디폴트 발생에 대한 우려가 시작되는 것 같다”며 “부채한도를 둘러싼 싸움이 꽤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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