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전승절(6·25전쟁 정전협정 기념일)’ 70주년을 맞아 대규모 무기 전시회를 열어 신형 무기를 공개하며 국방력을 과시했다. 미국 등 서방에서 북한의 러시아 무기 공급 의혹이 나오는 가운데 오히려 서방 세계에 보란 듯이 노골적으로 무기 세일즈 장면을 공개한 것이다.
조선중앙통신은 2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날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이 이끄는 러시아 군사대표단과 함께 ‘무장 장비 전시회-2023’ 전시회장을 찾았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쇼이구 장관에게 “최근 시기 조선 인민군이 장비하고 있는 무기 전투 기술 기재들을 소개”하고 “세계적인 무장 장비 발전 추세와 발전 전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통신은 전했다.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에 ‘NK(북한)방산’을 세일즈하는 모양새를 연출한 셈이다.
공개된 사진에는 미국의 고고도 무인 정찰기 RQ-4 글로벌 호크 및 무인 공격기 MQ-9 리퍼와 동체 모양이 흡사한 ‘짝퉁’ 기체들이 등장해 눈길을 끈다. 이들 무인 정찰기와 무인 공격기 앞에 세워진 설명판을 보면 두 기종이 비행하는 장면도 나온다. 북한이 최근 두 기종을 개발해 시험비행까지 진행한 것을 의미한다.
‘북한판 글로벌 호크’는 한국 공군이 미국에서 4대를 도입해 운용 중인 RQ-4의 겉모습을 거의 그대로 베낀 듯한 형상이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호크의 설계도를 해킹 등의 수법으로 절취해 동일하게 만든 것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되지만 겉모습만 그럴 듯하게 카피한 ‘깡통’ 기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고고도 정찰용 무인기는 높은 해상도와 안정적 기체 운용, 초고속의 고용량 데이터 송수신, 높은 보안성, 경량화 등을 위해 최첨단의 소재 및 광학·정보통신 부품, 동력 장치 등이 포함돼야 한다. 하지만 최근 북한이 쏘아 올렸다가 깡통 위성임이 들통난 정찰위성의 수준으로 미뤄볼 때 북한이 첨단 부품·소재·가공기술 등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북한은 앞서 지난해 말 남침시켰던 무인기들도 영상 촬영용 광학장비가 일반 상용 카메라 렌즈 수준에 그친 것으로 드러나 망신살을 겪기도 했다.
이 밖에 전시회장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액체 추진)과 화성-18형(고체 추진), 비행 종말 단계에서 변칙 기동을 하는 단거리 탄도미사일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 등도 전시됐다.
북한과의 무기 거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 위반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북한과의 무기 거래는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금지되고 있다”며 “정부는 긴밀한 한미 공조를 바탕으로 북한의 대외 무기 거래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26일(현지 시간) 북한이 일컫는 ‘전승절’ 행사에 러시아 고위급 대표단이 참석하는 것과 관련해 무기 공급 논의가 이뤄진다고 해도 놀랍지 않은 일이라는 반응을 내놓았다.
북한은 이날 오후 8시부터 ‘전승절’로 부르는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일 70주년을 맞아 심야 열병식을 개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후 8시께부터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 식전 행사를 시작한 데 이어 본행사를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선중앙TV는 열병식 광경을 생중계하지 않아 28일 녹화 방송할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에 따르면 2012년 김 위원장이 집권한 후 열병식은 총 13차례 개최됐다. 이 중 김 위원장이 불참한 것은 2014년 7월 27일 약식으로 열린 전승절 61주년 열병식이 유일하다. 김 위원장이 열병식에서 연설을 한 것은 5번이다.
이현호·신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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