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계부채 비중이 106%였다가 올해 103% 정도까지 떨어졌는데 지난달에 나온 숫자를 보면 우려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7월 13일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 총재 기자간담회)
“가계부채가 늘어나고는 있으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대출은 105%에서 101%까지 낮아졌습니다.” (8월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 회의)
가계부채의 적정 수준을 판단할 수 있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과 관련해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7월 기자간담회에서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3%라고 했으나 불과 한 달 만인 22일 국회에 출석해서는 101%까지 떨어졌다고 발언했다. 국회에서는 국제결제은행(BIS)을 통해 공개된 지난해 4분기 105%를 기준으로 질의가 오고 갔다. 가계부채가 최대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총재가 발언할 때마다 다른 숫자를 언급하면서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다.
먼저 이 총재가 구체적인 시점을 언급하지 않았으나 올해 1분기 말 기준으로 추정된다. 올해 1분기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이 실제로 이뤄지면서 지난해 4분기 105.0%였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3.4%까지 낮아졌다. 한은 금융안정국이 6월 낸 금융안정보고서에서도 올해 1분기 말 기준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3.4%다. 이 총재가 7월 말한 103%는 여기서 나온 숫자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총재는 왜 갑자기 103%를 101%로 2%포인트나 낮춰 말했을까. 정확히는 101.5%다. 이는 올해부터 적용되는 새로운 국제회계기준인 IFRS17 때문이다. 보험사들이 새로운 회계 기준을 적용하면서 보험약관대출을 가계대출에서 제외한 채로 한은에 기초 데이터를 제공한 것이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갑자기 2%포인트나 낮아진 것은 부채가 크게 줄어든 것이 아니라 회계기준 변경의 효과인 셈이다.
국제 비교를 할 수 있는 BIS의 가계부채 통계도 변경된 회계 기준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BIS에 따르면 우리나라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22년 1분기 105.8%, 2분기 105.4%, 3분기 105.3%, 4분기 105.0%로 조금씩 낮아졌다. 2021년 8월 한은의 금리 인상과 당국의 대출 규제 등으로 부채가 조금씩 줄어들고 지난해 경제가 소폭이나마 성장한 결과다. 그러다가 BIS가 9월 중 공개 예정인 올해 1분기 지표는 101.5%로 갑자기 큰 폭 낮아질 전망이다.
여기서 가계부채는 가계 및 비영리단체까지 포함하는 자금순환통계 기준이다. BIS 등 국제기구에서는 소규모 개인사업자까지 포함된 비영리단체의 부채도 가계부채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은이 발표하는 가계신용과는 다시 차이가 발생한다. 한은이 22일 발표한 가계신용 통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가계대출(비영리단체 제외) 잔액은 1853조 3000억 원이다. 지난달 공개한 1분기 자금순환 통계의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금융부채 잔액은 2272조 4000억 원이다. 한은은 1분기 자금순환 통계부터 변경된 회계기준에 따라 금융부채에 보험약관대출을 제외했으나 이에 대해 별도로 설명하거나 공지하지 않았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0%가 넘는 높은 상황에서 101%, 103%, 105% 차이가 크지 않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이 총재가 국회에서 한 발언 때문이다. 이 총재는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0% 미만으로 떨어질 수 있도록 향후 몇 년간 노력하는 것에 (한은, 정부, 금융당국 간) 공감대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중심으로 공감하는 것은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0% 밑으로 떨어지게 하고 중장기적으로 90% 등으로 천천히 내려가는 것이 정책 1순위”라고 재차 강조했다.
변수는 올해 2분기 이후 가계대출이 빠르게 다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외 경기 침체로 경제 성장률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성장세가 점차 떨어지는데 가계부채가 빠르게 늘어난다면 회계기준 변경 효과에도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낮아지는 데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5%라면 향후 몇 년 이내 100%까지 낮추기 위해 단기간 내 가계부채를 100조 원 넘게 줄이는 강력한 디레버리징이 필요하다. 가계부채 비율이 103%라고 해도 3%포인트를 낮추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회계기준 변경 효과로 2%포인트나 낮아진 상태에서 101.5%를 100%까지 낮추는데 필요한 부채 축소 규모는 20조 원 안팎으로 축소된다. 이마저도 1분기 명목 GDP 성장률 1.0%(전기 대비 기준) 등을 감안하면 부채를 일부러 줄이지 않아도 저절로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이다. 디레버리징 정책 강도에 차이가 생길 수 있는 정도로 보인다.
※ ‘조지원의 BOK리포트’는 국내외 경제 흐름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도록 한국은행(Bank of Korea)을 중심으로 국내 경제·금융 전반의 소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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