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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치즈마을에서 마주친 스토리의 힘

[인생2막 디지털 유목민으로 살아가기]<8>

■정남진 시니어 소셜미디어 마케터

구전에서 책, TV, 영화로 이어진 '스토리텔링'의 역사

지금은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시대

신문, 책 등 모든 아날로그 매체가 디지털 속으로

이미지=최정문




올여름 워킹 홀리데이(Working holiday) 장소로 임실치즈마을을 선택한 것은 오로지 한 인물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디디에 세스테벤스(Didier t'Serstevens)라는 파란 눈의 서양인. 6.25전쟁 직후 선교사로 한국에 파송됐던 벨기에 출신의 가톨릭 신부다. 임실과의 첫 만남은 1964년 그가 임실성당 주임신부로 부임 받은 게 계기였다.

전후(戰後) 한국 농촌이 다 그랬겠지만 당시 산골 마을 임실 지역의 삶은 더 혹독했다. 디디에 신부는 가난한 농민의 궁핍한 삶을 목격한 후 깊은 연민을 품게 됐고,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에 빠졌다. 그러던 어느 날 임실을 둘러싼 산과 싱싱한 풀밭을 발견하게 됐다. "바로 저것이다" 디디에 신부는 저 풀밭에서 산양을 길러 치즈를 생산하면 농민에게 자립의 기틀을 마련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곧바로 산양 2마리를 기른 후 마을 청년들에게 분양해 줬다.

하지만 디디에 신부는 치즈 만드는 방법을 몰랐다. 무작정 유럽으로 달려갔다. 벨기에로, 프랑스로, 스위스로, 이탈리아로. 상황은 쉽지 않았다. 누구 하나 선뜻 치즈 기술을 알려주지 않았다. 절망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탈리아 거리를 걷던 중 우연히 치즈 기술자 한 사람을 만나 그로부터 치즈 제조 기법을 담은 '깨알노트'를 하나 건네받았다.

가슴에 부푼 꿈을 품게 된 디디에 신부는 단숨에 임실로 달려와 이곳 농민들과 함께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드디어 1960년대에 한국산 첫 치즈를 생산하게 됐다.

디디에 세스테벤스, 한국명 '지정환' 신부의 이야기다. 오늘날 한국치즈산업을 대표하는 임실치즈의 탄생 스토리이기도 하다. 이야기의 힘은 크다. 그 이야기의 힘으로 무명의 산골 마을은 ‘유명한’ 임실치즈마을로 성장했다. 올여름 워킹홀리데이 활동 중 임실치즈마을의 마을 길을 걷다 보니 가는 곳마다 지정환이라는 이름과 마주치게 된다. 거리의 표지판에도, 카페의 벽면에도, 공공기관 정문 앞 조각상에도 어김없이 지정환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마을 민가의 벽에 그려진 큼직한 벽화에도 그의 얼굴이 등장해 인사를 건넨다.

임실, 살아 움직이는 스토리 마케팅의 현장

지정환 신부의 이야기는 이처럼 강력한 스토리가 되어 지금도 임실치즈마을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도 이야기는 이렇게 변함없이 살아 움직인다. 브랜드 마케팅 전쟁터에서 어떻게 스토리를 활용할 것인가를 제시한 책 ‘무기가 되는 스토리’의 저자 도널드 밀러는 “스토리는 가장 훌륭한 무기”라고 했다. 임실치즈마을의 사례는 스토리야말로 사업이든, 브랜드이든 그것을 지속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강력한 도구라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스토리 마케팅의 참 좋은 성공사례다.



이젠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시대

스토리는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있었다. 원시 인류는 대부분 유랑생활을 했으며, 그들은 이동을 할 때마다 짐을 가볍게 하기 위해 최소한의 것만 지녔다. 불과 지식, 제례 그리고 빠뜨릴 수 없는 것, 스토리였다. 당시에는 스토리텔링 기법으로는 구전이 전부였을 것이다. 그리고 인류의 삶이 진화하면서 공연 예술이 등장했을 것이고, 이어 우리에게 익숙한 글자를 기반으로 책과 신문이 나오고 라디오와 TV, 영화가 등장했다. 지난 세기 중반까지의 일이다.

디지털 혁명이 시작되면서 스토리 마케팅은 디지털 스토리텔링이라는 새로운 도구를 만나게 됐다. 그리고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디지털은 모든 걸 바꾸어 놓았다. 모든 형식의 아날로그 매체를 디지털이라는 하나의 공간으로 끌어들였다. 스마트폰 한 대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담은 콘텐츠를 단숨에 생산할 수 있게 됐다. 나아가 하나의 디지털 화면 안에 글부터 사진, 영상, 하이퍼링크(hyperlink·이미지 또는 글씨를 클릭하면 다른 페이지로 연결되는 것)와 쌍방향 소통까지 완벽하게 담아낼 수 있게 됐다. 아날로그 시절엔 생각할 수도 없었던 획기적인 스토리 전달 방식, 바로 디지털 스토리텔링이다.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표현력은 아날로그 시절에 비하면 정말 ‘혁명적’이다. 훨씬 더 섬세하고, 풍요롭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시니어든, 젊은이든, 디지털로 이야기를 꾸미고 콘텐츠를 완성하고, 전달하고, 공유하는 일에는 아무런 차별이 없다. 특히 ‘스토리’와 ‘디지털’에 능숙한 시니어에게는 더없이 좋은 여건이 펼쳐져 있다. 가히,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전성시대다.

디지털 헌사 한 줄

이번 임실치즈마을 워킹홀리데이의 주 업무는 이곳 치즈마을에 잠재된 이야기를 발굴해 디지털로 옮기는 일이다. 여러 이야기 중에서도 지정환 신부가 살아 온 삶과 그의 스토리는 그 어떤 이야기보다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그 시절 척박한 땅에서 가난한 삶을 이어가던 이곳 임실 농민들을 향한 애민의 마음, 그리고 헌신의 삶. 그의 스토리를 디지털 언어로 재구성하다 보니 어느새 깊은 감동이 밀려온다. 그를 위한 아주 자그마한 보답이라도 될까 해서 이곳 온라인 한 모퉁이에 한 줄 디지털 헌사를 남겨두고 싶다. 디디에 세스테벤스 신부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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