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장기금리 상승에 엔 매도, 달러 매수가 이어짐에 따라 엔·달러 환율이 또다시 150엔을 넘어서면서 엔화 가치가 올해 들어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환율이 심리적 저항선을 돌파하며 엔저가 심화하는 가운데 금융 당국의 시장 개입 및 정책 수정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6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장중 150.76엔까지 올랐다. 이는 엔화 가치 기준으로 연중 최저 기록이다. 이날 엔·달러 환율 상승은 전날 발표된 미국의 9월 신축 주택 판매 건수가 시장의 예상을 크게 웃돈 데 따른 것이다. 미국 경기가 여전히 견조한 것으로 나타나며 금융 당국의 긴축(고금리) 기조에 무게가 실려 국채 수익률이 상승했다. 일본이 마이너스 금리를 고수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고금리 기조는 양국 금리 차를 확대해 엔 매도 및 달러 매입(엔화 약세)을 부추긴다.
엔화 가치가 심리적 저항선인 150엔을 돌파하면서 시장에서는 정부 개입에 대한 경계감이 커지고 있다. 최근의 엔화 가치는 지난해 9월 일본 정부가 약 24년 만에 직접 시장 개입(달러 매도, 엔화 매수)에 나섰을 때보다 낮은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다. 당시 엔·달러 시세는 145.9엔이었다. 스즈키 슌이치 재무상은 이날 “긴장감을 갖고 동향을 지켜보고 있다”는 기존의 입장을 유지했다. 아직은 구두 견제에 그치고 있지만 상황이 심화할 경우 일본은행(BOJ)이 다시 개입해 엔저 진행 페이스를 늦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동안 ‘수출 기업 실적 상승’ 등 긍정적인 부분이 부각됐던 엔저 상황은 최근 물가 부담에 따른 소비 위축과 민생·기업 활동 제약 같은 부작용 우려를 키우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보고서에서 올해 일본의 경제 규모가 엔화 약세의 영향으로 독일에 추월당해 세계 4위로 밀릴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시장은 30~31일 열리는 BOJ의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수익률곡선제어(YCC) 등 금융 완화 정책에 수정이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YCC는 BOJ가 장기 국채금리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국채를 무제한 매입하는 정책이다. BOJ는 7월 장기금리 상한을 종전의 0.5%에서 사실상 1.0%로 올리는 내용으로 YCC를 수정했다. 그러나 미국 국채 수익률 상승의 영향으로 일본 10년채 수익률도 1%에 육박하는 흐름이 이어지면서 ‘YCC 재수정론’이 부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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