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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금융이 무너지고 있다[김영필의 SIGNAL]

<1> 금융시장의 적들은 누구인가

한국의 은행과 증권, 보험, 카드, 저축은행 등은 외환위기 때부터 정부의 지원을 받아왔다. 천문학적인 공적자금 투입으로 당국이 갈아놓은 밭에서 하나둘씩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금융의 신뢰가 하나둘씩 무너지고 있다. 무분별한 관치는 지양해야 하지만 지금은 시장의 기강이 무너지고 금융의 신뢰가 깨지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금융시장은 크게 외환위기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정부는 도산 위기에 빠진 금융사들의 구조조정에 168조 원을 투입했다. 눈물의 구조조정이 이어졌다. 상위 5대 은행을 뜻하는 ‘조·상·제·한·서’, 조흥은행·상업은행·제일은행·한일은행·서울은행은 외환위기를 거치며 자취를 감췄다. 종합금융사와 증권사, 보험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금융사 합병과 파산, 대규모 정리해고가 이어졌다.

정부는 국민의 혈세와 많은 이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금융시장이라는 밭을 잘 갈아 놓았다. 2002년 카드 사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긴 했지만 한국의 금융시장이 움트기 시작했고 KB금융(105560)신한지주(055550)의 경쟁,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지면서 발전의 기틀이 만들어졌다. 금융인들도 노력했다. 베일에 쌓여 있던 사모펀드(PEF) 운용사들도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2023년, 한국 금융이 무너지고 있다. 금융의 핵심인 원칙과 신뢰가 깨지고 있기 때문이다. 라임과 옵티머스, 레고랜드 사태를 포함해 문재인 정부 시절부터 수년 간 각종 사안이 누적된 탓이지만 그 속도가 빠르고 급격하다. 이대로라면 한국 금융은 미래가 없다는 말이 제기된다.

①신뢰깨는 금융당국: “관치·정치·내치 다음은 포퓰리즘”…“금감원발 피의자 정보유출” 지적도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은 2013년 기자와 만나 “관치가 없으면 정치가 되고 정치가 없으면 호가호위 하는 사람들의 내치가 된다”며 당시 이팔성 전 회장이 이끌던 우리금융지주(316140)를 에둘러 비판했다. 관치가 줄면서 정치권의 압력이 기승을 부리다가 이제는 대주주가 없다는 점을 악용해 일부 금융지주사 회장들이 제멋대로 금융사를 운영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2023년, 시장은 포퓰리즘에 꽂힌 서툰 관치가 지배하고 있다. 6일부터 시행된 공매도 전면금지가 대표적이다. 지금까지 공매도 전면금지는 위기 때 이뤄졌다. 2008년 금융위기와 2011년 유럽발 재정위기, 2020년 코로나19 침체 등이 그것이다.

시장주의의 첨병이라는 미국도 위기 때는 제로금리와 무제한 양적완화(QE)를 한다. 외환위기 때 한국에 가혹한 고금리 정책을 요구했던 그들도 2008년 금융위기를 맞자 입장이 180도 바뀌었다. 위기에는 특별하면서도 과도한 정책을 쓸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하지만 이번 공매도 전면금지는 다르다. 공매도 운영에 문제가 있는 건 맞지만 전면 금지할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이 위기인가. 누가 봐도 내년 총선을 겨냥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융당국 수장의 신뢰도 깨졌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3월 29일 블룸버그통신에 “금융시장 불안이 몇 달 안에 해소되면 공매도 규제를 정상화할 계획이 있다”며 “올해 안에 규제가 풀리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며칠 뒤인 4월 3일 “금융시장 불안 완화 없이는 공매도 재개는 검토조차 어렵다”고 말을 바꿨다가 6일부터는 아예 전면금지 조치를 취했다.

금융은 신뢰가 생명이다. 약속한 시점에 돈을 내어주는 게 금융이다. 약속을 깨거나 말을 바꾸면 안 된다. 그래서 금융당국 수장의 발언은 무게가 있어야 하고 신중해야 한다. 다른 정부 부처와 다르다. 공매도 전면금지 조치 자체도 포퓰리즘적이지만 그 과정이 국내외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기에 충분하다는 게 금융권 관계자들의 공통된 얘기다.

이복현(왼쪽) 금융감독원장과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공매도 전면금지 조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국이 두세 발 앞서 나가는 모습도 지나치다는 말들이 많다. 현재 금감원은 카카오모빌리티의 3000억 원 대 분식회계 여부를 두고 감리를 벌이고 있다. 카카오모빌리티의 택시 가맹사업은 기사(개인택시)나 택시회사(법인택시)가 운임 20%를 카카오모빌리티에 수수료로 내면, 카카오 측이 15~17%를 택시기사와 법인택시에 되돌려준다.

전문가들도 이 같은 회계처리가 상식적이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회계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직관적으로 봐도 (20%에서 17%를 뺀) 3%만 받는 게 맞다”고 했다.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다. 그는 “글로벌 스탠다드는 이렇게 할 수도 있고 저렇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라며 “(단순한 게 좋지만 지금처럼) 공시를 제대로만 한다면 문제는 없으며 그렇기에 분식회계 운운하는 것은 정말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카카오는 혁신이 없고 택시 등 서민만 쥐어짜는 업체(과세당국 고위관계자)”라는 말에 동의하지만 이것도 분식회계와는 엄연히 다른 얘기다.

김범수 전 카카오 의장의 소환과정에 대한 뒷말도 끊이지 않는다. 금감원은 창립 24년 만에 처음으로 포토라인을 세우고 공식적으로 김 전 의장을 소환했다. 이 전후 과정을 두고 “금감원발 피의자 공표 아니냐”는 말이 흘러나온다.

금융감독 당국이 최근 들어 카카오의 시세조종 혐의와 글로벌 투자은행(IB)의 무차입 공매도, 증권사들의 채권 돌려막기, 영풍제지 주가조작 등 시장 질서를 훼손하는 사건을 일벌백계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은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 거칠고 시장의 신뢰를 깨뜨리는 부작용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직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금감원은 뒤에서 조용히 검사와 일처리를 하는 곳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 좋아 보일 수 있어도 뒷날 부담으로 되돌아 올 것”이라고 조언했다.

②원죄 잊은 은행: “수없이 혜택 받고도 금융안정·사회공헌 나몰라라…내부통제 엉터리 이익에만 급급”


국내 최고 은행으로 손꼽히는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 하나은행 등은 외환위기 이전에는 중소은행에 불과했다. 리딩 뱅크인 국민은행은 1963년 서민금융 전담 국책은행으로 시작했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주택은행과 합쳐 몸집을 불렸는데 국민과 주택은행은 가계대출 위주여서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기업 부실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일본계 동포 자금으로 세워진 신한은행이나 단자사에서 출발한 하나은행은 외환위기 전에는 금융권에서 명함도 제대로 못 내밀었다.

1997년의 외환위기는 종금사에서 시작해 은행과 대기업으로 부실이 번지면서 전 국민이 고통을 겪었다. 금융권도 고통을 분담했지만 그때 살아 남아 지금 대형 은행이 된 곳들은 새로 깔린 판 아래에서 정부의 직간접적인 금융시장 안정책에 힘입어 성장했다. 자체적인 노력도 있었지만 국가와 국민의 지원을 절대로 무시할 수 없다.

이후에도 사건은 계속 터졌다. 2002년 카드사태를 거쳐 2008년 금융위기 때는 정부가 은행에 외화지급보증을 해줬다. 국내 은행들이 외화부채를 갚지 못하면 정부가 대신 갚아주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원달러 환율이 치솟고 해외 금융사들이 한국 금융사들에 대한 크레디트라인을 끊자 국내 은행들은 외화부채 부도 위기에 몰렸다.

IMF 구제금융행을 알리는 서울경제신문 1997년 11월 22일자 1면.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금융권의 밭을 잘 갈아놓았다. 지금 국내 금융사는 그 역할을 다하고 있을까.


대표적인 게 하나금융지주(086790)다. 하나은행의 경우 기술적으로는 부도를 냈다는 말이 나돌았다. 금융위원회는 은행별 외화부채 한도의 125%까지 보증을 서줬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115억 달러)이야 그렇다고 쳐도 하나은행(80억 달러), 국민(60억 달러), 신한(60억 달러) 등의 지급보증을 받았다. 외화지급 보증이 없었으면 이들 은행은 지금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 대책반장이라고 불렸던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2011년 “내가 지금까지 은행에 세 번 속았다”고 했다. 그 세 번이 외환위기, 카드사태, 금융위기다.

대한민국의 금융 규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위기가 아닌 평시에도 수시로 관치가 이뤄진다. 미국의 ‘스카이패스 비자 시그니처 카드(연회비 99달러)’는 발급 3개월 내 4000달러(약 520만 원)를 쓰면 대한항공(003490)에서 쓸 수 있는 4만 마일을 한 번에 적립해준다. 이전에는 4만5000마일이었는데 다소 줄었다. 한 달에 173만 원을 쓰면 평수기 기준 북미 이코노미 좌석을 비즈니스석으로 승급할 수 있는 마일리지를 통째로 받을 수 있다. 신용카드를 만들기만 해도 300달러를 계좌에 꽂아주는 상품도 수두룩하다.

한국에서는 이 같은 카드를 찾아볼 수 없다. 여신전문금융업법 시행령은 신용카드 신규 모집 시 연회비의 100분의 10을 초과하는 경제적 이익 제공을 금지하고 있다. 카드뿐 아니라 전 업권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사사건건 규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은행들은 관치에 시달려왔지만 정부의 지원 아래 ‘온실 속 화초’처럼 커왔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지금도 정부의 안정적인 거시경제 정책과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덕을 보면서 1%포인트(p) 안팎의 안정적인 이자 장사로 천문학적인 이익을 내지만 눈에 띄는 혁신이나 성공적인 해외진출은 없다. 금융당국 출신 금융권의 고위관계자는 “업계로 나와보니 딴 짓만 안 하면 충분히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게 금융업임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함영주(왼쪽 두번째) 하나금융지주 회장과 이석준(〃 세번째) NH금융지주 회장, 임종룡(〃 여섯번째) 우리금융지주 회장 등이 3월 31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감원장과 함께 간담회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하나금융만 해도 단자사에서 출발해 잇단 인수합병을 거쳐 외환은행까지 인수했다. 정부와 국민의 직간접적인 지원으로 성장해왔지만 글로벌 시장에서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금융위


실제 올 들어 3분기까지 누적 순이익을 보면 △KB금융 4조3704억 원 △신한금융 3조8183억 원 △하나금융 2조9779억 원 △우리금융 2조4383억 원 등에 달한다. KB만 해도 3분기까지 순익이 4조 원이 넘는다. 은행이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 핵심은 누워서 헤엄치기로 돈을 버느냐, 아니면 치열한 경쟁 끝에 많은 이익을 냈느냐다. 한국 은행들이 글로벌 은행보다 나은 것은 편리한 애플리케이션과 통합돼 있는 금융계좌, 친절한 고객 서비스 정도다. 투자은행(IB) 부문이나 금융기법, 해외진출에서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더 뱅커(The Banker) 선정 2023 글로벌 상위 25개 은행에 △중국 11개 △미국 6개 △프랑스 3개 △일본 2개 △영국 1개 △스페인 1개 △러시아 1개 등이 이름을 올렸다. 특히 국제결제은행(BIS)이 꼽은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글로벌 은행 40개에 한국 은행은 한 곳도 없다. JP모건체이스와 HSBC, 씨티, BNP파리바, 뱅크오브아메리카(BofA)가 1~5위를 차지하는 가운데 중국은 9개, 일본은 4개 은행이 선정돼 있다. 한국 대형 은행이 문을 닫은들 글로벌 경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데는 한 군데도 없다는 의미다. 과거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자력 발전소 수출이나 최근 방위산업 수출 지원이 애를 먹는 것도 국내 은행의 작은 규모와 경쟁력 부족이 원인이다.

한국 은행이 안방 호랑이에 그치다 보니 윤석열 대통령의 “소상공인이 은행 종노릇을 해왔다”는 발언이나 횡재세 도입 주장을 반박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청와대 눈치에 앞다퉈 사회공헌을 발표하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는 않다. 금융권의 핵심 관계자는 “소상공인과의 상생방안이 정말 소상공이인을 위한 것이 되려면 속보경쟁 식의 금융그룹별 충성 경쟁이 아니라 금융당국과 소상공인, 은행들이 머리를 맞대고 심사숙고해 실질적인 안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며 “금융그룹별로 다들 뭔가 빨리 하려고 난리인데 한심스럽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각종 대출 횡령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추가로 하나금융지주는 지난달 산업은행이 매각을 추진 중이었던 KDB생명의 인수를 공식 포기했다. 지난 7월 우선인수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후 3개월가량 끌어오다가 “보험업 강화 전략 방향과 맞지 않다”며 인수를 중단했다. 금융당국의 고위관계자는 “KDB생명 부실이나 재무상황은 다 알려진 것인데 예비입찰이면 몰라도 우협에는 왜 선정된 것이냐”며 “속된 말로 속옷만 들춰보고 내뺀 것”이라고 비난했다.

하나금융의 옛 별칭은 ‘HSBC’로 하나은행(H)이 서울은행(S)과 보람은행(B), 충청은행(C)을 인수하며 덩치를 키웠다. 여기에 외환은행까지 삼켰다. 하나금융 임직원들의 노고가 컸지만 당국과 국민들의 지원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일들이다.

③길 잃은 상호금융: “새마을금고가 왜 PE 업계 큰 손이 되나…농협은 회장 셀프연임 추진 근본 개혁 필요”


새마을금고법 제1조는 자주적인 협동 조직을 바탕으로 상부상조 정신에 입각해 자금의 조성과 이용, 회원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 향상과 지역사회 개발을 통해 국가경제발전에 이바지한다고 돼 있다. 새마을금고의 금융부문은 쉽게 말해 신용협동조합과 같다. 회원들에게 은행보다 예금 금리는 더 주고 대출금리는 낮게, 그리고 돈이 필요할 때 손쉽게 빌려주는 게 목적이다. 무차별 다수를 상대로 하는 은행과 달리 금고는 같은 동네, 우리 회사 직원들이 회원이기 때문에 서로의 사정을 잘 안다. 그래서 남는 이익은 배당해 나눠 갖는다. 굳이 이익을 많이 낼 이유도 없다.

그런데도 새마을금고는 설립 목적을 잊은 채 지난해 대체투자 비중을 30%대 중반까지 높였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각종 부동산 대출에 손을 댔다. 한도가 모자라는 건은 공동대출과 집단대출로 빠져나갔다. 사모펀드(PEF) 운용 업계에서는 새마을금고 대체투자 팀장을 만나기 위해 혈안이었다. 2019년 말 27조2000억 원이었던 새마을금고의 건설·부동산업 대출은 지난해 말 현재 56조3000억 원으로 약 107%나 불어났다. 한국의 경제 성장률이 3년 만에 두 배 이상 커진 건 아니다. 2012년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에서 보듯 빠른 자산규모 확대는 반드시 몇 년 뒤 부실로 돌아온다. 회원들끼리 힘들 때 신용대출을 해주라고 만들어진 새마을금고다.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새마을금고는 대출 자산을 줄이고 본래의 설립 목적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새마을금고의 설립 목적이 자본시장 발전인가. 새마을금고의 자산을 줄이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매다는 일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 연합뉴스


결국 사건은 터졌다. 지난 6월 서울동부지검은 PEF 운용사 ST리더스로부터 불법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로 새마을금고중앙회 최모 팀장을 구속했고 7월에는 단위 금고 부실 우려에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이 발생했다. 큰 사회적·경제적 대가를 치른 것이다. 상호금융권의 혼란은 저축은행과 캐피탈 같은 제2 금융권으로 확산될 수 있고 이 경우 은행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길을 잃은 새마을금고의 쇄신을 위해서는 신용공제업무 감독권의 금융위 이전도 필요하지만 비대해진 자산 규모를 줄여야만 한다는 게 금융권 안팎의 시각이다. 설립 취지를 벗어나 몸집 불리기와 영향력 행사에 몰두하는 게 아닌 뼈를 깎는 자산축소 과정이 필수라는 얘기다. 새마을금고는 상부상조를 통한 서민 지원과 지역사회 발전이 목적이지 자본시장 발전과 부동산 PF 활성화, 이익 극대화를 위한 조직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최근의 새마을금고 혁신 논의 과정에서 자산축소 같은 실질적 대안이 논의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새마을금고는 자산을 줄여나가야 한다”며 “하지만 정치권 뒷배가 튼튼한 새마을금고와 행정안전부가 이를 추진할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정체성 위기는 농업협동조합도 비슷하다. 서울 서초구 언남중학교 인근에 본점을 둔 영동농협은 6월 말 현재 총 자산이 3조451억 원에 이른다. 이중 대출자산이 2조2613억 원으로 전체의 약 74.3%다. 올 상반기 대출과 공제(보험) 등 이자와 수수료로 얻은 신용사업 수익이 약 809억 원으로 농산물 판매 같은 경제사업 수익 약 95억 원의 8배가 넘는다. 시중은행의 지점 같은 신용지점도 본점을 비롯해 도곡과 개포, 강남, 대치, 삼성로, 압구정로데오 등 강남 일원에 11개나 된다.

조소행 농협 상호금융대표이사가 9월 충남 홍성에서 고구마를 캐며 농촌일손돕기를 하고 있다. 이날 농협은 IMM홀딩스 직원들과 함께 했다. 기업가치 제고를 최우선으로 하는 자본주의의 최첨단인 PE와 상부상조 정신을 원칙으로 하는 협동조합 임직원이 함께 있는 모습은 반가우면서도 어색하다. 농협


이들 지역에 농민이 많으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강남에 농민이 얼마나 될까. 확인이 가능한 2015년 기준 영동농협의 조합원(농민)은 792명이지만 외부인인 준조합원이 3만7435명에 달한다. 쉽게 말해 일반 고객들에게 돈을 받아 자금을 굴리고 있다는 뜻이다. 영동농협의 설립목적은 “조합원이 생산한 농산물의 판로확대 및 유통 원활화와 조합원이 필요로 하는 기술과 자금 지원”이라고 돼 있다. 영동농협을 대표 사례로 들었지만 전국 단위 농협의 사정도 큰 틀에서 비슷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0년 403만 명이었던 전국 농가인구는 2020년 기준 231만 명으로 쪼그라들었다.

상황이 이런 데도 농협중앙회는 농협법 개정안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회장 연임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연임 추진에 대해 “답답하다”고 했다. 농협 측은 이에 대해 농협법 개정안은 △도시농협 도농상생사업비 납부 의무화 △비상임조합장 3선 제한 △회원조합 지원 자금 투명성 확보 △회원조합 준법감시인 제도 도입 △중앙회장 1회 연임 허용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농협의 고위관계자는 “연임 관련 사항은 논란이 있으나 타협동조합과의 형평성에 비춰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④그들만의 리그 증권: “채권 돌려막기부터 해임 아닌 사임이라는 CEO까지…자기책임 원칙 온 데 간 데 없다”


금융위는 이달 중 라임자산운용(라임)과 옵티머스자산운용(옵티머스) 사태와 관련해 펀드 판매사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징계를 결정한다. 박정림 KB증권 대표와 정영채 NH투자증권(005940) 대표, 양홍석 대신증권(003540) 부회장 등이 대상이다. 이르면 15일에 열리는 금융위에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수년 간 증권업계를 달군 라임과 옵티머스, 최근의 디스커버리까지 사모펀드 판매상품의 경우 정관계 로비나 유력인사들의 고문 재직, 특혜 환매 의혹 등이 불거졌다.

물론,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파생결합펀드(DLF) 불완전판매 책임에 대해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고 일부 증권사들은 자신들도 피해자라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당국의 보이지 않는 압력에 투자 의사결정을 본인이 지는 ‘자기책임 원칙’이 훼손되면서 금융시장이 뒤흔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증권사들이 금감원의 100% 배상 판정에 불만을 토로하는 것도 일리는 있다. 저축은행 후순위채와 2013년 동양그룹 기업어음(CP)·회사채 사태를 겪고도 투자자들에게 어떤 교훈도 남지 않았던 부분은 짚어볼 대목이다. 당시 동양그룹 CP와 회사채를 매입한 개인투자자는 약 4만1000명, 피해금액이 1조6000억 원이었다.

그럼에도 업계 전반에 구멍이 뚫려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펀드 판매가 잘 될 때는 성과보상을 받았을 것”이라며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내부통제 문제를 CEO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도 그렇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나오는 것도 보기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증권사 채권 돌려막기만 해도 그렇다. 그동안 증권사는 법인고객의 3~6개월 단기자금 유치를 위해 채권형 랩어카운트 상품을 운영했다. 원칙적으로 만기가 같은 데 투자해야 하지만 증권사들은 더 높은 고금리로 고객을 유인하기 위해 만기가 맞지 않는 고위험 채권을 사들인 뒤 만기 시 다른 증권사에 채권을 팔거나 자체 자금으로 메워줬다. 돌려막기를 해온 것이다. 충격적인 부분은 증권사들이 “업계 관행”이라는 명분 아래 필요에 따라 채권을 서로 사주면서 도왔다는 부분이다. 전직 금융당국의 고위관계자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증권사들은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 때 당국의 지원을 받았다. 한국증권금융이 3조 원 플러스 알파의 유동성 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했고 한국산업은행이 최소 2조 원 규모의 증권사 기업어음(CP) 매입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국채 발행도 자제했다. 당시 금융위 내부에서는 증권사 몇 곳은 문닫게 해야 한다는 강경론이 있었지만 실무자들은 “증권사들의 행태가 올바르지 않지만 그럼에도 시장을 먼저 살리자”는 대세론을 내세웠다. 시장 안정을 위한 금융사의 금융지원 결정은 면책을 해준다고 밝혔고, 시중 유동성 확보를 위해 은행과 저축은행의 예대율 규제도 풀었다.

키움증권은 4월 CFD 사태에 이어 10월에는 대규모 미수금 사태를 일으켰다. 한 번은 사고지만 두 번까지 포장할 수는 없다. 연합뉴스


그러나 증권업계에서는 증권사 보증 PF-ABCP 매입에 종투사 9개사가 500억 원씩 출연하는 것을 두고 “당국이 팔을 꺾는다”며 불만을 내비쳤다. PF로 3500억 원 대의 성과급 돈잔치도 벌이는 와중에도 시장 불안은 외면하려 한 것이다.

나 하나만 바라보는 풍토는 여전하다. 지난 4월 차액결제거래(CFD) 서비스를 이용한 ‘라덕연 사태’에 이어 지난 달 영풍제지 사태로 4000억 원 대의 손실이 발생했던 키움증권(039490)은 CEO 해임소식이 전해진 3일 “대표이사 해임을 골자로 한 내부조직 개편 등은 풍문에 지나지 않으며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감독당국의 비공식적인 확인과 한번(4월)은 사고지만 두 번은 아니라는 경고에도 ‘풍문’, ‘사실이 아니’라는 표현을 써가며 부인했다.

하지만 일주일도 채 안 된 9일 키움증권은 “황현순 사장이 이사회에 사임 의사를 전달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해임이 아닌 스스로 물러났다는 꼴이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태다. 시장 혼란을 일으켰음에도 고객과 투자자들을 기망하는 행위”라고 했다.

최근 몸집이 커진 PE 업계에서도 업무집행사원(GP)과 유동성공급자(LP)의 유착 같은 ‘오적’ 얘기가 나돈다. PEF 운용사가 시내버스 사업자를 인수해 준공영제의 취지를 일부 무력화하는 것도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대통령이 나서 불법 사금융을 뿌리뽑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는 것은 환영할만 하지만 연 20%로 묶여 있는 법정최고금리와 대부업 활성화 방안을 외면하는 것도 문제다.

산업은행의 일방통행식 ‘깜깜이’ HMM(011200) 매각도 과거에는 찾아볼 수 없던 부분이다. 그동안 공적매각은 금융당국의 주도로 청와대와 산업은행(또는 수출입은행), 관계부처 등이 함께 나섰지만 지금은 산은 내에서도 극히 일부에 결정권이 집중돼 있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금융의 신뢰와 원칙이 무너지고 있으며 시장의 기율이 사라졌다”며 “미국처럼 필요할 때 강력한 관치를 하더라도 작은 것부터 원칙을 세우는 노력이 필요한 때”라고 설명했다.

※‘김영필의 SIGNAL’은 서울경제신문의 자본시장 전문 매체 시그널(SIGNAL)을 통해 제공됩니다. 투자은행(IB) 업계의 이슈와 뒷이야기, 금융시장이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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