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의 대표적 유적지인 경복궁 담장에 낙서를 한 남녀 피의자가 범행 나흘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연인 사이인 이들은 ‘돈을 주겠다’는 지인의 제안을 받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문화재보호법 위반, 재물손괴 혐의를 받는 A(17) 씨와 B(16) 씨를 각각 19일 오후 경기 수원시 소재의 거주지에서 검거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달 16일 오전 1시 42분께 서울 종로구 경복궁 영추문 담장, 오전 1시 55분께 국립고궁박물관 쪽문 담장, 오전 2시 44분께 서울경찰청 동문 담장에 붉은 색과 푸른색의 스프레이로 ‘영화꽁짜’ ‘○○티비’ 등 불법 영상 공유 사이트를 홍보하는 듯한 낙서를 하고 도주한 혐의를 받는다. 다만 B 씨는 A 씨와 함께 현장에 있었지만 낙서 행위에는 가담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불법 영상 공유 사이트 낙서를 쓰면 돈을 주겠다”는 지인의 제안을 받고 경복궁 담장 두 곳에 약 44m에 달하는 낙서를 했다. 낙서를 한 뒤 담장 앞에서 인증 사진을 찍기도 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행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국가지정문화재의 현상을 변경하거나 보존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행위를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또 지정문화재에 글씨 또는 그림 등을 쓰거나 그리거나 새기는 행위 등을 해서는 안 된다는 문화재 보호법 제82조3을 위반할 경우 해당 행위를 한 사람에게 문화재를 원상 복구하는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
경찰은 이들이 찍힌 인근 CCTV 영상과 택시 승하차 내역 등을 토대로 수사를 이어오다 신원을 특정하고 체포영장을 발부 받아 이날 검거에 이르렀다. 범행 이후 이들은 CCTV를 피해 주도면밀하게 도주한 탓에 경찰의 추적에 다소 시간이 걸렸다. 또 주말께 사건이 발생해 CCTV 등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피의자들의 신원 파악과 도주 경로 확인이 어려웠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낙서를 하고 홀연히 사라진 이들의 신원을 조기에 파악하고 검거하지 못한 경찰의 초기 수사가 도마 위에 올랐다. A 씨와 B 씨가 16일 오전 1시 55분께부터 약 1시간 동안 도심을 활보하며 범행을 이어갔지만 이들의 신원과 동선 파악이 빠르게 이뤄지지 않은 까닭이다. 이에 수사 초기 단계에서부터 더욱 강력하고 집중적인 인력 투입과 수사가 이뤄졌어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이건수 백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처음부터 강력범에 준하는 수준으로 수사를 진행했다면 진행 상황이 더 빨랐을 것”이라며 “요즘은 사람이 걸어다니는 모든 곳에 CCTV가 있기 떄문에 초기에 집중적으로 인력을 투입해 동선 등을 밝혀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16일 발생한 경복궁 담장 낙서를 모방한 것으로 보이는 또 다른 낙서가 17일 오후 10시 42분께 발견되기도 했다. 최초 낙서 발생 위치 인근인 영추문 좌측 담장에 낙서를 한 혐의를 받는 20대 C 씨는 범행 다음날인 18일 오전 11시 45분께 경찰에 자수해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경찰 조사에서 C 씨는 “관심을 끌고 싶어서 그랬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1차 낙서 피의자들과의 관련성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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