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과 챗GPT가 자기 소개서를 써주고 회사에 발표해야 할 PPT까지 만들어주는 세상이다. 모르는 걸 물어보면 1초도 안 돼서 컴퓨터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편한 기술이 있는데 언제 전쟁이 일어났고 언제 어떤 나라가 독립을 했는지 굳이 알아야 할까 의문이 든다. 신간 ‘역사의 가치’는 이러한 의문에 과거를 디딤돌 삼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역사는 필요하다고 답한다.
저자는 책에서 지금 당연하게 여기는 모든 일이 역사적으로 기본 원칙으로 자리 잡은 결과라고 지적한다. 가령 며칠 집을 비워도 그 집은 여전히 내 집이며 다른 사람이 갑자기 들어와 사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 택시를 타면 택시의 브레이크가 제대로 작동하고 도로의 다른 운전자들도 교통 법규를 지켜 운전할 것으로 기대한다. 몸이 아파 병원에 가면 상근 의사와 간호사가 있고 이들이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치료해준다.
이 모든 게 어그러지고 기대와 다른 일들이 펼쳐진다면 현대인들은 기괴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쌓아온 지식, 경험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사실과 행동들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이는 일상의 작은 일들만 해당되지 않는다. 18세 이상 모든 성인이 차별 없이 투표권을 갖고 부모의 경제력에 상관없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도 모두 역사의 산물이다.
이 취지를 바탕으로 책은 근현대사에서 인류가 어떤 길을 밟아 지금에 이르렀는지 인간상, 종교, 성별, 정치, 민족, 전쟁, 경제 등 7개 키워드별로 살펴본다. 지금으로부터 시간이 한참 지난 역사적 사실에만 초점을 맞춘 게 아니라 최근 70년 내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들을 키워드와 연결해 설명한다.
실제로 성별 파트에서 저자는 2019년 독일에서 이슬람 단체가 남성에게 아내를 때릴 정당한 권리가 있다는 글을 게재한 사실을 거론한다. 여성에 대한 인식은 기독교가 지배적이던 중세시대 남성의 부산물에 그친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프랑스혁명으로 여성 인권이 제창됐지만 이마저도 한시적 주장에 그쳤다.
저자는 1차 세계대전 등을 거치고 법률이 여러 차례 개정되면서 양성평등의 제도가 마련됐다고 조명한다. 그러나 앞선 이슬람 단체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적으로 양성평등을 이루기 위해서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는 인간이 종교, 이데올로기, 국가, 그에 준하는 권위자로부터 받은 정체성을 타고난 존재로 생각하고 이에 따라 남성과 여성을 차별적으로 인식한다. 저자는 결국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 여성과 남성 모두 해결해야 할 도전 과제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 책은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현재에 대입할 수 있는 역사적 관점을 제시한다”며 “이를 통해 인간적이고 평화로우며 모두 똑같이 살 만하다 여길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용기를 내야 한다”고 말한다. 1만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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