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이 28일 내놓은 ‘2023년 인구동향 조사’는 여러 항목에서 좋지 않은 의미의 역대 기록을 경신했다. 지난해 4분기 합계출산율이 처음으로 0.6명대로 내려온 것을 비롯해 연간 출산율 사상 최저, 첫 시도별 합계출산율 1명 하회, 평균 출산 연령 33.6세로 역대 최대치를 새로 썼다. 첫째아의 비중(60.1%)도 처음으로 60%를 넘어섰다. 아이를 낳더라도 한 명만 낳겠다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는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20대 후반(25~29세) 인구 1000명당 출생아 수는 21.4명으로 5년 만에 반 토막 났다. 결혼 연령이 늦어지면서 아이를 출산하는 시점 역시 뒤로 밀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기혼자 사이에서도 아이를 낳기 꺼리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1년 ‘가족과 출산 조사’에 응답한 기혼 여성 2695명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 중 아이를 더 낳을 의도가 아예 없다고 답한 비율은 72.5%나 됐다. 아이를 꼭 더 낳겠다고 답한 비중은 전체의 17.6%에 불과했다.
혼인 건수도 늘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연간 혼인 건수는 2022년보다 1.0% 증가한 19만 3673건이었다. 2022년 코로나19로 인해 혼인 건수가 급감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반등 폭이 크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지난해 12월 혼인 건수는 전년 동월 대비 11.6% 줄어들며 2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혼인 건수는 2021년 19만 2507건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20만 건을 밑돈 후 3년 연속 19만 건대에 머물러 있다.
미혼자 사이에서도 출산을 기피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는 우려 또한 나온다. 지난해 8월 한반도미래연구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39세 미혼자 중 아이를 가질 의향이 없다고 답한 비율은 47%였다.
정부는 올해 합계출산율이 0.68명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내년에 0.65명까지 내려왔다가 다시 반등하는 시나리오다. 하지만 이 역시 장밋빛 전망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인구평가모니터링센터장은 “중장기적으로 정부의 장래인구추계보다 합계출산율이 낮게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짚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예상한 2041년보다 5000만 명 선 붕괴 시점이 더 빨리 도래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지금까지의 저출생 대책이 총체적으로 실패한 만큼 주거·일자리·교육·산업 등 모든 정책을 제로베이스에서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기존의 저출생 대책을 하나로 모아 그동안의 성과를 평가하고 실효성을 따져 사업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저출생 대책을 총괄하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예산과 세제·금융 등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하고 저출생특별회계를 만드는 방안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얘기도 관가에서 흘러나온다. 인구부 같은 특단의 대책 없이는 저출생을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 또한 팽배하다.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국민의힘 공약총괄본부장)는 “저출생 대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일·가정 양립과 주거인데 정책적 뒷받침이 약했다”며 “예산을 비롯해 부처 전반의 정책 운영을 저출생의 관점에서 풀어야 하며 저출생을 중심으로 정책 체계를 다시 꾸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현금성 지원 외에 아이를 대신 맡아 키워주는 조부모에 대한 지원과 육아 과정에서 생기는 부부 사이의 갈등 상담, 아이를 낳아 기르는 데 대한 긍정적 사회 인식을 확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경은 한국지방행정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금전과 같은 전형적인 경제적 지원보다 (가족들과의) 정서적 교감이나 육아 정보, 아이를 키우는 데 대한 긍정적인 가치 인식이 있을 때 여성이 출산 의도를 가질 확률이 높아진다”고 주장했다.
재계에서는 출생아 수를 획기적으로 높이려는 노력과 함께 생산성 제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주요 연구기관은 저출생을 근거로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2050년께 0%대에 진입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주현 산업연구원장은 “생산가능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기 때문에 높은 기술을 요구하는 산업 부문으로의 더 빠른 전환이 필요하다”며 “특히 제조업에서는 인공지능(AI)과 자동화 기술을 활용한 생산성 향상이 더 시급해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력 측면에서도 기술과 지능을 더 요구하는 노동력을 배출할 수 있도록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며 “양질의 정보기술(IT) 인력 등을 이민을 통해 해결할 수 있도록 이민 관련 사회적 논의 또한 재빨리 시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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