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이 8일 “정부의 밸류업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배주주 이익만을 우선시하는 기업경영 사례가 반복 발생해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최근 그룹 계열사 합병 과정에서 두산과 SK 등 일부 기업이 소수주주 이익을 침해한다는 논란이 불거지자 이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이날 이 원장은 금융투자협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23개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와의 간담회에서 “정부와 시장참여자들의 진정성 있는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로 근절돼야 할 ‘그릇된 관행’”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날 간담회엔 삼성·미래에셋·KB·신한·키움 등 공모운용사 16개사와 NH헤지·얼라인파트너스 등 사모운용사 5개사, 이스트스프링·베어링 등 외국계 2개사 등이 참석했다.
이날 이 원장은 “주주 권익보호보다는 경영권 행사의 정당성만 강조되어 온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며 “주주 간 이해상충을 해소하기 위해 개별적·사후적으로 대응했으나 이제는 기업의 철저한 인식 전환을 위해 이사의 충실의무와 관련해 원칙 중심의 근원적 개선방안을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자산운용사에 대해선 투자자 자금을 모아 시장에 공급하는 핵심 투자주체인 만큼 기업 체질을 본질적으로 개선해야 하는 역할과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 경영 감시활동 등을 통해 투자기업 가치를 높이는 등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 이행해달라”며 “내부통제 강화나 준법의식 고취를 노력하고 상장지수펀드(ETF) 경쟁 과열 우려가 높아지는 만큼 운용사의 책임감 있는 역할을 당부한다”고 했다.
금감원은 기업지배구조 선진화는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가치와 규범인 문화로 정착돼야 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8월과 9월 중 간담회와 열린토론회 등을 개최해 자본시장 선진화에 필요한 공감대를 본격적으로 형성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이날 자산운용사 CEO들은 기업지배구조 개선, 밸류업 등 자본시장 선진화 방안에 대해 의견과 건의사항을 전달하기도 했다. 대부분은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도입이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이끌 것으로 기대된다는 의견이다. 또 금융투자소득세는 국내 투자 위축과 자금 이탈, 펀드런 등 부작용이 예상되는 만큼 폐지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일부 운용사는 불가피하게 시행하더라도 사회적 논의를 통한 공감대 형성, 제반 인프라 구축, 보완책 마련 등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김민국 VIP자산운용 대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근본 원인은 낮은 대주주 지분율로 회사 전체를 지배하면서 발생하는 소유와 지배의 괴뢰로 인한 이해상충을 유발하는 한국 특유의 기업지배구조”라며 “밸류업을 위해선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도입, 집중투표제 의무화, 금투세 폐지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최혁재 프랭클린템플턴 본부장도 “한국 주식시장 저평가는 주로 취약한 기업지배구조, 소수주주 권익 경시, 낮은 자본 효율성 등에 기인한다”며 “밸류업이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려면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확대하고 상장 계열사의 합병·주식교환 시 가치평가 방법 개선 등 주주 간 구조적 불공정 해소가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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