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본다는 것은 불편함의 재미를 일깨워줍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과 다르게 관객의 사정에 맞춰주지 않는 극장이라는 큰 존재와 만나는 불편함이 사람들에게 중요한 경험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본 영화계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사진) 감독은 29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OTT로 주도권이 넘어간 시대에도 영화관에 가야 하는 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그는 씨네큐브가 개관 25주년을 맞아 6일까지 개최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특별전’ 참석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특별전에서는 ‘원더풀 라이프’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어느 가족’ 등 그의 작품 13편을 볼 수 있다.
고레에다 감독은 “첫 작품부터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꾸준히 선보여 이제 한국은 외국 같지 않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를 묻자 “자주 와서 그런 것 같다”며 “맛있는 한국 음식을 먹으러 왔다가 일을 하는 것 같다”고 답했다. 이어 “이번에도 도착하자마자 간장게장을 먹었다”고 했다.
22018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어느 가족’을 비롯해 그의 작품은 평범한 이야기 속에 소외된 인물들이 등장해 우리가 외면했던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평론가들은 그의 뿌리인 다큐멘터리에서 그 이유를 찾기도 하지만 그는 “그저 마음에 탁 걸리는 이야기를 찍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편 한편 눈 앞에 마주하는 것들을 찍는 것만 생각한다”며 “인터넷에 나도는 평가에 대해서 저는 모른다. 가족, 사회, 사건을 다루겠다는 생각보다 그때 그때 마음에 걸리는 것을 부풀려 나가는 형태로 작품을 만드는 게 룰”이라고 덧붙였다. ‘어느 가족’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해에 심사위원장이었던 배우 케이트 블란쳇이 ‘인비저블 피플’이라는 표현을 했지만 그건 그의 작품에 국한된 게 아니라 그 해 대부분의 작품이 비슷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모두 보려 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엄연히 살아 있고 ‘아무도 모른다’ 같은 작품도 이러한 인식을 갖고 만든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영화 특유의 잔잔함 때문에 젊은 세대는 그의 작품이 다소 낯설 수도 있다. 도파민에 중독되고 집중력이 약한 10대 등 젊은 관객들이 영화를 졸지 않고 보는 방법에 대해 묻자 “일단 잠을 제대로 자고 극장에 오면 된다"며 “일본 10대도 제 영화를 보지 않는데 봐주면 좋다"고 말하며 웃어 보였다. 이어 “저는 10대에 제 작품을 보고 이해가 안 갔는데 40대가 돼서 다시 보고 깨달음을 얻었으면 한다. 영화는 그런 식으로 관객과 재회하는 미디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코로나 이후 한국의 극장은 혹한기를 겪고 있다.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주도권이 넘어가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한국이 OTT 시장에 빠르게 휩쓸리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나름의 분석을 내놓았다. 그는 “일본에서는 아트 하우스나, 미니 씨어터가 폐업 위기에 처하자 영화팬들이 3억 원을 모아서 작은 극장에 나눠 줬다”며 “아직 확고한 영화팬들이 일본에는 아직 있고 크리에이터들이 용기를 얻었다”고 전했다. 이어 “일본은 변화에 느린데 한국은 빠르다”며 “이러한 특징이 한국과 일본이 영화 시장, OTT 시장의 차이를 만든 게 아닐까 싶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 영화가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좋은 작품들을 만났다고도 했다. 그는 “황정민 씨가 나온 ‘서울의 봄’을 봤는데, 김성수 감독이 정말 뛰어난 분이라고 느꼈다”며 “'파묘' 또한 매우 독특한 작품이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 영화의 힘으로는 배우들이 역량를 꼽기도 했다. 그는 “한국 배우들은 기본기가 탄탄하고 연극적인 소양이 몸에 뱄다"며 “몸을 매우 잘 움직이는 배우 기본기를 제대로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얼마 전까지 드라마 연출을 주로했지만 앞으로 5년 동안은 영화 작업만 할 계획이다. 그는 “두 편을 찍는데 원작이 있는 작품 하나를 지금 준비하고 있고, 가을부터 촬영하는 작품은 오리지널로 패밀리 드라마”라며 “한중일 배우들과도 작업을 할 계획이 있다”고 전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 시즌2 제작 계획에 대해서는 “넷플릭스에 만들어 달라고 요청해 달라”며 “준비는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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