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일 조기 대선을 앞두고 정치테마주 광풍이 다시 국내 증시를 휘몰아치고 있다. 한 번 테마주로 묶인 종목은 정치인 일거수일투족에 따라 상한가와 하한가를 반복하면서 한국 증시의 신뢰성을 깎아먹는 중이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정치인들은 상법 개정 등 각종 정책으로 자본시장을 선진화하겠다면서 수십 년째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후진적 정치테마주 현상엔 침묵한다.
이달 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과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 등 정치적 대형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면서 2일 증시에선 테마주로 분류되는 종목들이 크게 요동쳤다.
이 후보 테마주로 묶인 상지건설은 전 거래일보다 15.32% 하락한 2만 625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회사에 재직했던 사외이사가 선거 캠프로 합류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 약 보름 만에 900% 이상 상승했던 종목이다. 지난달 1일 3020원에서 18일 장중 5만 6400원으로 1767% 올랐다가 지금은 반 토막이 난 상태다. 마찬가지로 이재명 테마주로 꼽히는 오리엔트바이오(-16.29%), 이스타코(-12.14%), 삼륭물산(-20.18%), 형지엘리트(-9.60%) 등은 10~20%대 하락 폭을 기록했다. 과거 이 후보가 잠시 일했던 회사였거나 과거 성남시장 재직 시절 정책 관련 종목이라는 이유로 테마주가 된 종목들이다.
반대로 한덕수 전 총리 테마주라고 하는 일정실업은 30.00% 오른 3만 1850원으로 상한가를 기록했다. 일정실업은 고동수 부회장이 과거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으로 한 전 총리와 함께 활동했다는 이유만으로 테마주로 분류되고 있다. 이외에도 시공테크(12.26%)와 시공테크 계열사인 아이스크림에듀(21.02%), 모헨즈(10.66%) 등도 급등했다. 시공테크 역시 박기성 회장이 한 전 총리와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민간위원으로 함께 활동한 이력이 있다며 테마주로 엮였다.
이 후보나 한 전 총리뿐만 아니라 다른 후보들도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기업들이 테마주로 묶여 높은 주가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고향인 경북 영천에 계열사 공장이 있다거나(평화홀딩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 같은 청주 한씨라는 이유(태양금속)만으로 테마주로 둔갑했다.
금융감독원이 정치테마주로 부당이득을 챙긴 과거 사례를 분석한 결과 이른바 ‘작전 세력’이라고 불리는 혐의자들은 주가가 크게 움직일 수 있는 저가 주식이나 유통물량이 적은 종목을 먼저 선정해 사들인다. 이후 해당 종목이 특정 정치인과 학연, 혈연, 지연 등을 통해 조금이라도 연관성이 있다는 점을 텔레그램이나 인터넷 게시판 등을 통해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유포해 테마주를 만든다. 정치테마주로 한 번 분류돼서 상한가를 기록하거나 큰 폭 상승하면서 주목을 받고 나면 매수세가 유입되고 이후 사전매집한 주식을 매도해 부당이득을 실현하는 식이다.
선거 때마다 당국에선 정치테마주 투자 손실을 강조하고 불공정거래로 처벌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개인 투자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정치테마주로 한 방을 노린다. 한국 개인 투자자 특유의 높은 위험 추구 성향과 함께 주식을 장기 투자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는 투기적 행태가 기저에 있기 때문이다.
정치테마주로 묶인 기업도 적극 해명하지 않는다. 통상 테마주 주가 변동에 한국거래소가 조회 공시를 요구하면 “사업 내용과 관련이 없다”라거나 “중요한 공시사항이 없다”라는 정도로 짧게 답변하는 데 그친다. 주가가 크게 오르면 대주주나 임원이 주식을 대거 매도해 차익을 실현하거나 전환사채(CB)를 보통주로 전환하는 등 이득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치인부터가 정치테마주를 알고도 못 본 척 하는 경향이 관찰된다. 사실상 정치테마주 움직임이 지지율 등과 맞물려 움직이기 때문이다.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면 테마주 주가가 오르고, 조금이라도 변수가 생기면 주가가 하락하면서 즉각적인 반응이 나타난다. 자칫 테마주와 연관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가 주가가 폭락하면 표심을 잃을 가능성도 있다. 당장 선거를 눈앞에 두고 자본시장을 갉아먹는 테마주를 방관한다는 것이다.
정치테마주는 한국 증시의 후진성을 대표하는 현상이나 정치권에선 단 한 번도 이를 바로 잡겠다고 나서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정치테마주 현상은 한국을 정경유착이 심하고 장기투자보단 투기적 단타가 횡행하는 시장으로 만들기 때문에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요인이 된다.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 등이 정치테마주 특별단속반을 확대하고 적극적인 점검에 나섰으나 후진적 투자 문화와 정치권 방관 등으로 한계가 분명하다는 지적이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당국에서 아무리 적극적으로 대응하더라도 국내 주식시장 한계가 있는 한 정치테마주 현상은 근절되기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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