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제3국을 배제한 직접 협상을 제안했다. 유럽 및 미국의 제재 압박이 일부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푸틴 대통령은 11일(현지 시간) 크렘린궁에서 발표한 성명에서 “15일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분쟁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진지한 협상에 나설 것”이라며 “휴전도, 정전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세부 사항을 협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번 협상이 성사될 경우 2022년 3월 이스탄불 회담 이후 약 3년 만에 양국 간 직접 협상이 이뤄지게 된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반인 당시 양측은 우크라이나의 중립화 및 국방력 제한 등을 담은 합의안 초안을 마련했으나 협상이 무산됐다. 이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정부를 ‘키이우 정권’이라 칭하며 대화 자체를 거부해왔다.
푸틴 대통령은 이번 협상을 제안하면서도 협상 결렬의 책임은 우크라이나에 돌렸다. 그는 “2022년 협상을 중단시킨 것은 키이우 정권”이라며 “러시아는 반복적으로 휴전을 제안해왔으며 평화를 원해왔다”고 주장했다.
푸틴의 협상 제안은 최근 유럽과 미국의 압박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전날 영국·프랑스·독일·폴란드 정상은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방문해 “러시아가 30일간의 조건 없는 휴전을 수용하지 않으면 추가 제재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추가 제재에는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확대, 에너지·금융 부문 제재 강화,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 영구 폐쇄 등이 포함된다. 러시아를 대하는 미국의 태도가 예전 같지 않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10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은 향후 협상 국면에서 중재 역할을 줄이거나 배제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푸틴 대통령의 제안을 두고 ‘진정성’을 믿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간 푸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경고성 발언이 나올 때마다 부활절 30시간 휴전, 전승절 72시간 휴전 등을 일방적으로 선언한 뒤 교전을 이어가며 시간을 벌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에 따르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의 제안을 듣고 "이것은 답변을 회피하는 방식"이라며 "그가 협상으로 나아가려는 모습은 보이지만, 여전히 시간을 벌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지적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일단은 "긍정적 신호"라고 반응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러시아가 12일부터 완전하고 지속가능하며 신뢰할 수 있는 휴전을 확인해주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직접 대화에 앞서 우크라이나와 유럽이 제안한 30일간 휴전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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