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핵심 동맹국인 이스라엘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외교 기조에 깊은 당혹감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를 방문하면서도 이스라엘을 의도적으로 제외한 데 이어, 가자지구, 예멘, 심지어 시리아와 관련된 주요 정책 결정에서 이스라엘과의 사전 조율 없이 일방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13일(현지시간) 중동 순방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열린 사우디·미국 투자 포럼에서 연설을 통해 시리아에 대한 제재를 모두 해제할 것이라고 밝혔다.
알 아사드 독재정권이 작년말에 붕괴하고 과도정부가 들어선 시리아와 관련, "나는 시리아에 발전할 기회를 주기 위해 시리아에 대한 제재 중단을 명령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우리는 제재를 모두 해제할 것"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란의 영향력이 큰 시리아에 대한 경제적 완화는 이스라엘 입장에선 자국 안보를 위협하는 조치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전날 미국이 하마스와의 직접 협상을 통해 이중국적 인질 에단 알렉산더를 석방하는 데 성공하면서 점화된 이스라엘의 우려가 시리아 제재 해제로 더욱 커진 것이다. 해당 협상은 트럼프 대통령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 온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도 사전에 공유되지 않은 채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자국민 구출에 집중하며 전쟁 종결 쪽으로 기조를 바꾸자, 이스라엘 내에서는 "미국이 하마스를 뿌리뽑기 전 전쟁을 멈추라는 압박을 가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미국의 이스라엘 패싱은 예멘 후티 반군과의 휴전 협상에서도 드러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멈추겠다는 조건도 없이 후티 반군과의 공습을 중단하고 일방적으로 휴전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후티는 텔아비브 벤구리온 공항 등을 향해 미사일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
미국과 이란 간의 핵 협상도 이스라엘과 미국간 갈등의 또 다른 축이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우라늄 농축을 단호히 반대하고 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며 기존 ‘절대 불가’ 입장에서 한발 물러난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배제된 채 중동의 힘의 균형이 재편되고 있다는 인식은 이스라엘 사회 전반에 실망감을 낳고 있다.
이스라엘 싱크탱크 국가안보연구소(INSS)의 요엘 구잔스키 선임연구원은 “미국은 중동에서 이스라엘을 포함하지 않는 새로운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더 이상 이스라엘의 전략적 이익을 최우선에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존 테스터 전 민주당 상원의원도 미 정치매체 더 힐에 “이번 순방에서 이스라엘을 의도적으로 뺀 것은 강력한 메시지”라며 “이스라엘이 이 신호를 읽지 못한다면 그건 청각장애 수준”이라고 짚었다.
경제 분야에서도 이스라엘의 기대는 빗나갔다. 미국은 자국 제품에 대한 이스라엘의 관세를 철폐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수출품에는 17%의 관세를 새로 부과했다. 특수동맹으로서의 혜택은커녕 실리를 챙기기 어려운 상황이 된 셈이다.
이스라엘민주주의연구소(IDI)의 요하난 플레스너 소장은 “이스라엘인들은 트럼프의 2기를 1기의 연장선으로 기대했지만, 이제는 냉정한 현실을 마주하게 됐다”며 “그는 이스라엘 총리가 아니라 미국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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