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세 종류의 의사가 있다고 한다. 병을 고치는 의사 ‘소의(小醫)’와 사람을 고치는 의사 ‘중의(中醫)’, 그리고 사회를 고치는 의사 ‘대의(大醫)’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근무해도 환자를 보는 시간이 한정돼 있는 의사로서 대의가 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정보기술(IT)에 의학을 접목하면 어떨까. 분당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에서 기업인으로 변신한 황희 카카오헬스케어 대표는 “인적자원에 의존하는 전통적 의료 서비스로는 사람들의 수요를 다 채우기 힘들지만 일상생활에 밀착된 IT 서비스는 다르다”며 “일면식도 없는 산골 주민의 건강관리까지 도울 수 있다는 것은 헬스케어 IT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의 특권”이라고 말했다.
카카오헬스케어 대표로서 내놓은 첫 결과물이 혈당 관리 서비스 ‘파스타(PASTA)’인 것도 황 대표의 이러한 철학과 관련이 깊다. 국내에 당뇨병과 당뇨병 이전 단계를 포함해 혈당 관련 문제에 노출된 인구는 2100만 명 수준이다. 당뇨병 연간 진료비가 3조 2000억 원에 달하는 등 당뇨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 역시 급증하고 있다. 혈당 관리를 위해서는 균형 잡힌 식단과 운동 등 생활 습관이 중요하지만 의사가 매일 환자의 일상을 돌보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황 대표는 “질병 예방과 치료는 물론 치료 후 관리가 연결돼야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지만 사람들이 아플 때만 의사를 찾는 것이 현실”이라며 “사람들이 스스로 주치의가 돼 일상생활에서 병을 치료하고 예방하도록 하는 게 카카오헬스케어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라고 밝혔다.
‘파스타’는 연속혈당측정기(CGM)와 연계해 실시간으로 혈당을 관리하는 서비스로 지난해 출시 이후 급성장하고 있다. 카카오헬스케어의 매출은 2023년 45억 원에서 지난해 119억 원으로 약 3배 성장했고 파스타 모바일 앱 다운로드는 최근 22만 건을 돌파했다. 파트너사인 미국 덱스콤과 국내 기업 아이센스가 파스타와 연동해 CGM을 판매하면 카카오헬스케어는 그 수익 일부를 서비스 수수료로 받는다. 파스타 사용자가 늘어나고 CGM 활용 기반이 넓어질수록 카카오헬스케어의 매출 또한 늘어나는 구조다.
이에 카카오헬스케어도 파스타 사용자를 확대하기 위해 기존 당뇨·전당뇨에서 비만으로 서비스를 확장했다. 이달 1일부터 파스타에서 새롭게 선보인 체중 관리 서비스 ‘피노어트’가 바로 그 일환이다. 방송 출연을 통해 ‘식욕 교수’로 유명해진 최형진 서울대 의대 교수와 협력해 살찌는 원인을 20개 유형으로 나누고 각 개인의 특성에 맞는 체중 관리 습관을 알려준다. 황 대표는 “‘위고비’ 등 비만 치료제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현명하게 살을 빼는 방법에 관심이 많아졌다”며 “수면 분석과 스트레스 자가 측정 등 기능을 추가하는 한편 ‘디지털 폐지 줍기’로 불리는 리워드 프로그램을 강화해 올해 파스타 사용자를 3~4배까지 늘리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황 대표는 올해 9월로 예정된 일본 시장 진출이 또 다른 ‘퀀텀점프’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카카오헬스케어는 지난달 일본 현지법인 설립을 완료한 데 이어 현재 법인 대표를 물색하고 있다. 그가 일본 시장에 기대를 걸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일본에서 파스타 서비스를 유료화함으로써 카카오헬스케어도 수익성 면에서 반등을 꾀할 수 있어서다. 황 대표는 “국내시장은 앱을 유료로 쓰는 데 익숙하지 않지만 해외시장은 다르다”며 “특히 일본은 소득과 IT 보급률이 높은 데다 우리나라와 식습관 등이 비슷해 가장 접근하기 쉬운 시장이다. 파트너사인 덱스콤 역시 올해 일본 시장에 집중하기로 해 타이밍이 잘 맞아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일본 시장에 안착하면 누적된 영업손실을 만회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그는 전망한다. 카카오헬스케어의 영업손실은 2023년 220억 원에서 지난해 349억 원으로 불어난 상태다. 하지만 이는 국내외 사업 확장에 따라 계획된 적자였다고 카카오헬스케어 측은 설명한다. 흑자 전환을 목표로 하는 시점은 내년 말이다. 황 대표는 “올해 일본 사업을 시작해 내년부터는 유의미한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면서 “사업 초기부터 해외시장을 염두에 뒀고 장기적으로는 미국·중동 시장 진출 또한 고려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일본이 투입 자원 대비 가장 높은 효율을 낼 수 있는 시장”이라고 봤다.
성공적인 일본 시장 진출을 위해 현지 제약사와 파트너십도 모색 중이다. 황 대표는 “우연한 기회에 일본에서 비만 치료제를 판매하는 회사와 연이 닿아 비만 약과 파스타 앱을 함께 사용하도록 하는 서비스를 논의하고 있다”며 “계획대로 진행되면 올 8월부터는 일본 대학병원과 연계해 파스타 시험 버전을 출시해 사용성이 괜찮은지, 파스타가 비만 치료에 도움이 되는지 테스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렇다면 파스타 서비스는 실제로 체중 관리와 생활 습관 개선에 효과적일까. 황 대표는 지난해 파스타 출시 이후 10㎏ 감량에 성공하며 몸소 효과를 증명해 보였다. 그는 “원래 2형 당뇨로 주치의가 ‘이러다 진짜 당뇨 합병증이 생길 수 있으니 약 챙겨 먹고 운동해야 한다’고 타박했는데 파스타를 쓰는 1년 반 동안 당화혈색소가 전당뇨보다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전했다. CGM을 착용하고 있으면 파스타가 귀찮은 비서처럼 잘못한 것들을 하나하나 눈앞에 내놓으니 그것을 두고 볼 수 없어서 식단을 조절하고 식후 운동도 하게 됐다고 한다.
다른 파스타 사용자들에게도 긍정적인 평가를 얻고 있다. 황 대표는 “기업체 대상 건강관리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50% 이상이 당뇨 위험군에 속하지만 이전까지는 대부분 이를 의식하지 못했다가 파스타를 통해 식습관, 운동 습관을 바꾸는 분들이 많다”며 “당뇨 환자가 파스타를 쓰고 2~3개월 뒤 병원에 갔는데 주치의가 ‘그동안 뭘 했는데 이렇게 좋아졌냐’며 놀라워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소개했다.
사용자가 늘어나다 보니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파스타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 짜릿한 경험도 했다. 그는 “카카오헬스케어 대표로 일하는 동안 단연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이라고 돌아봤다. 황 대표가 최근 대한피부과학회 참석차 광주에 갔을 때의 일이다. 반팔 상의에 CGM을 차고 식당에 들어갔더니 단번에 알아본 식당 아주머니로부터 ‘우리 반찬 먹었을 때 혈당이 많이 오르지 않아야 할 텐데’라는 얘기를 들었다. 아드님이 당뇨 환자라 프로모션 기간에 CGM 여러 대를 사서 달아준 덕분에 파스타를 알아차린 것이다.
카카오헬스케어는 IT 기업이자 헬스케어 기업일 뿐 아니라 대기업에 속한 스타트업이라는 특성이 있는 까닭에 조직 관리는 황 대표의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이기도 하다. 카카오헬스케어에는 의사·간호사 등 의료 전문가와 개발자·기획자·디자이너 등 IT 전문가까지 전혀 다른 구성원들이 한데 모여 있기 때문이다. 같은 기획자라도 계속 IT 업계에 있었는지, 헬스케어 데이터를 다뤘는지에 따라서도 성격이 다르다. 황 대표는 “오죽 고민이 많았으면 인수후통합(PMI) 전문가 강의까지 찾아가 듣고는 했다”고 털어놓았다. 최근에는 금융 백그라운드와 IT 백그라운드가 합쳐진 카카오뱅크의 윤호영 행장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는데 ‘억지로 무리하려고 하면 더 나빠지니 비전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줬다고 한다.
황 대표는 이어 “워낙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에 1~2년 안에 완벽한 통합을 이루기는 쉽지 않겠지만 충분한 시간을 두고 상호 커뮤니케이션하는 문화를 만들어보려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아플 때나 아프지 않을 때나 꾸준히 건강을 관리(커넥티드 헬스)하도록 하고 스스로 주치의가 돼 주도권을 갖고 건강을 관리(페이션트 인게이지먼트)한다는 비전을 계속 소통하는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1969년 서울 △서울대 의과대학 △분당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뇌신경센터 교수, 최고투자책임자 △이지케어텍 부사장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보건의료정보화추진단장 △국가보건의료IT추진단장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디지털헬스케어·데이터보호활용 위원 △대통령 직속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AI·데이터분과 위원 △총리실 산하 바이오헬스혁신추진단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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