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한국 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퀘일할로 클럽(파71)에서 끝난 제107회 PGA 챔피언십의 화두 중 하나는 ‘드라이버 테스트’였다. 미국골프협회(USGA)는 선수들의 드라이버 페이스가 얇아져서 반발력이 높아지지 않았는지 대회마다 무작위 검사를 한다. 페이스는 오래 쓰면 얇아지기도 한다. 강력한 우승 후보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가 검사에서 불합격해 예비 드라이버를 들고나왔다는 얘기가 퍼졌고 그는 그 탓인지 드라이버가 흔들리면서 3오버파 공동 47위에 그쳤다.
이날 우승 뒤 관련 질문을 받은 세계 랭킹 1위 스코티 셰플러(29·미국)는 “나도 검사에 불합격해 백업 드라이버를 썼다”고 털어놓았다. 스펙은 똑같더라도 어딘지 익숙지 않았을 텐데 셰플러는 2위 그룹과 5타 차의 넉넉한 우승을 이뤘다. 상금은 342만 달러(약 47억 9000만 원).
지난해 ‘머그샷’ 해프닝에 이어 올해는 첫날 ‘머드볼’ 불운이 찾아왔으니 셰플러와 궁합이 안 맞는 대회로 보이기도 했다. 대회장 입구에서 사고 수습을 하던 경찰의 정차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가 범인 식별용 사진인 머그샷을 찍히는 소동을 겪고도 지난해 공동 8위에 올랐던 셰플러는 올해 대회 1라운드에는 진흙이 잔뜩 묻은 공을 룰대로 쳤다가 더블 보기를 적는 불운을 겪었다.
그럼에도 그는 이 대회 우승으로 만 29세 이전에 PGA 투어 15승과 메이저 3승을 달성한 세 번째 선수(2차 세계대전 이후 기준)가 됐다. 잭 니클라우스(미국)와 타이거 우즈(미국) 다음이다. 2022·2024년 마스터스 제패 뒤 첫 메이저 우승인 셰플러는 메이저 3승을 모두 2위 선수와 3타 이상 격차로 달성하는 기록도 썼다. 첫 메이저 3승을 전부 3타 차 이상으로 장식한 선수는 ‘스페인 전설’ 세베 바예스테로스와 셰플러 둘뿐이다.
관련기사
지난달까지만 해도 마스터스 우승으로 커리어 그랜드슬램(4대 메이저 석권) 대기록을 쓴 매킬로이에게 ‘대세’를 내주는 분위기였으나 셰플러는 5일 더 CJ컵 바이런 넬슨에서 8타 차 우승으로 시즌 첫 승을 올린 뒤 이번까지 출전한 2개 대회 연속 우승으로 물길을 자기 쪽으로 돌려놓았다. 2023년 5월부터 지키고 있는 세계 1위 지위는 더욱 공고해졌다.
3타 차 선두로 출발한 셰플러는 버디와 보기 4개씩으로 이븐파를 쳐 합계 11언더파 273타를 남겼다. LIV 골프의 브라이슨 디섐보(미국) 등 2위 그룹은 6언더파다.
9번 홀(파4) 티샷 미스에 보기를 적은 사이 욘 람(스페인)이 10·11번 홀 연속 버디를 잡으면서 셰플러는 공동 선두를 허용했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10번 홀(파5) 버디로 곧바로 단독 선두를 되찾았고 14번 홀(파4)에서 기막힌 벙커 샷을 홀 가까이 붙여 2타 차로 달아났다.
이 사이 람은 ‘그린 마일(사형장 복도)’ 별명의 16~18번 홀에서 참사를 겪었다. 16번 홀(파4)에서 1타를 잃었고 17번(파3)과 18번 홀(파4)에서는 티샷을 모두 물에 빠뜨리면서 연속으로 더블 보기를 적었다. 세 홀에서 5타나 잃고 4언더파 공동 8위까지 내려갔다.
셰플러는 그린 마일에서 나흘간 1타밖에 잃지 않았다. 드라이버 정확도가 62.5%로 비교적 낮은 편이었지만 어프로치로 얻은 타수 1위(1.224타), 그린을 놓쳐도 파나 그보다 좋은 점수를 내는 스크램블링 1위(71.3%) 등 위기관리의 클래스가 달랐다. 우승 뒤 모자를 벗어 내리꽂듯 던지는 ‘햇 스파이크’ 세리머니를 펼친 셰플러는 “마인드 컨트롤이 내 최대 강점인데 오늘 스윙이 잘 되지 않을 때도 인내심을 유지한 것이 우승 요인”이라고 했다. 2타를 잃은 김시우는 4언더파 공동 8위에 올라 메이저 개인 최고 성적을 경신했다. 종전 최고 성적은 2021년 마스터스 공동 12위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