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항공산업은 민간 주도로 나가야 하고 정부는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해야 합니다. 물론 정부와 기업 사이에 깊은 신뢰 구축은 기본이죠.”
조광래 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원장은 우주항공의 날(27일)을 앞두고 서울경제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앞으로 민간 기업이 우주항공산업을 이끌겠지만 모든 것을 감당하기는 어렵다”며 “정부는 간섭보다는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기업은 정직하게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전 원장은 1989년 항우연 창립 멤버로 참여해 액체로켓 KSR-III 개발책임자, 나로호 개발책임자, 누리호 개발책임자를 역임하고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제10대 원장을 지냈다. 2023년 항우연을 퇴사한 후 현재는 발사체 기술 개발 스타트업에서 기술 자문을 하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 여성 골퍼들이 미국 여자골프투어(LPGA)를 정복한 비결을 묻는 외국 기자의 질문에 한 국내 골프계 인사가 ‘한국 정부에 여성 골프를 담당하는 조직이 없기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한 적이 있다”며 “정부와 민간이 얽혀 있는 우주항공 분야에 정부의 간섭이 있게 되면 엄정한 성과 평가 등이 이뤄지기 어렵게 되고 결국 산업 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판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인 우주항공청이 이달 말 개청 1주년을 맞는다. 오랫동안 이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 전 원장은 우주항공청 개청과 우주항공의 날을 기대와 걱정이 교차하는 시각으로 바라본다. 그는 “우주항공의 날 제정으로 국민의 우주항공 분야에 대한 관심·자긍심을 높이고 우주항공 기술 개발과 산업화에 민간의 활발한 참여 확대가 이뤄지기를 희망한다”면서도 “다만 많은 기대를 모았던 우주항공청이 개청하고 1년간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기억에 남는 게 없다”고 꼬집었다.
조 전 원장은 2032년 달착륙 목표로 추진되던 차세대발사체 개발이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재사용 로켓으로 개발 방향을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과 추진제 연료를 등유에서 메탄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 등을 놓고 탁상공론을 하고 있다”며 “이렇게 허송세월을 보내는 동안 연구개발 현장은 개점휴업 상태가 되면서 당초 정부가 약속한 2032년 달착륙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조 전 원장은 우주항공 관련 기관들이 여러 지역으로 흩어져 있는 것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경남 사천에는 제조 기반 중심(한국항공우주산업), 전남 고흥은 발사체 중심(나로우주센터), 대전은 연구개발 중심(항우연)의 기업·기관들이 있어 우주항공 산업의 구심점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는 “이렇게 우주항공 관련 기관·기업들이 분산돼 있는 것을 보면 ‘영남·호남·충청 지역에 떡 한 개씩 줬으니 불평하지 말라’는 식으로 보이는데 이는 정치가 과학기술을 농락하는 것”이라며 “우주항공 분야 발전을 위한 정책을 펴는 게 아니라 모양 좋은 그림만 그려놓은 격”이라고 지적했다.
조 전 원장은 우주항공산업은 안보와도 직결돼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산업으로의 파급 효과가 크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그 어떤 분야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계 각국은 우주군을 창설하는 등 현대전은 우주전으로 불릴 정도로 우주항공 기술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또 태양전지, 정수기, 레이저 수술기기, 인공심장펌프, 디지털카메라, 진공청소기 등은 모두 우주항공 기술에서 나왔을 정도로 산업적 부가가치도 큰 분야”라고 말했다.
조 전 원장은 우주항공 관련 과학자를 꿈꾸는 청소년·청년들을 향해서도 “평생의 업으로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다”며 적극 추천했다. 그는 “세상의 모든 도전이 가치 있고 해볼 만한 일인데 우주항공에 대한 도전은 대단히 큰 가치가 있다”면서 “달과 화성에 가는 것, 심우주를 탐사하는 것에 참여한다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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