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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옥 칼럼] 한중관계에 어떤 실용주의가 필요한가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다음 주면 제21대 한국 대통령이 취임한다. 6월 15일 캐나다의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각종 외교 일정이 기다리고 있지만, 인수위원회도 구성하지 못한 채 국정을 시작해야 하는 부담을 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들뜬 정치적 신념이 복잡한 현실을 단순하게 재단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유독 실용주의가 널리 회자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실용주의는 문제를 중심에 두고 수평적으로 사고하는 것이다. 문제(問題)라는 말뜻은 ‘지금 있는 상태와 앞으로 있어야 할 상태의 간극’이다. 따라서 실용주의는 문제를 정확하게 발견하고 이를 구체적인 현실에서 해결해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용주의는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라 실사구시(實事求是)를 관철해야 민생에 다가갈 수 있다. 실사(實事)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실이나 현상을 검증하고 확인하는 것이고, 구시(求是)는 낡은 해석이나 권위에 맹종하지 않고 참된 것을 찾아가는 비판적 사고다. 이렇게 보면 실용주의는 현실에서 출발해 사물의 본질과 규칙을 찾되 ‘돌다리를 두드리며 길을 가는’ 신중한 실천이 수반돼야 하고 그 과정에서 협치와 통합, 그리고 집단지성이 필요하다.

지난 정부의 외교정책은 인력과 예산, 정보의 부족에도 가치의 진영화를 추구하면서 실사구시를 소홀히 했다. 세력권(sphere)의 정치가 귀환했으나 동맹에 편승하는 쉬운 길을 찾았으며 성근 대외정책의 이념을 국내 정치에 끌고 와 체제전쟁, 자유의 북진, 탈중국 논리를 설파했다. 더구나 계엄을 선포하고도 ‘국민 계몽’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한국과 민주주의의 퇴행을 거듭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이 가치외교를 표방한다면 어느 누가 믿겠는가.



한국의 대중국 정책도 마찬가지였다. 가치외교를 표방했으나 실상은 이념 외교와 진영 외교에 기대고 있었다. 국무총리와 대통령실 경제수석이 “중국 경제가 거의 꼬라박는 수준이다”, “중국을 통한 수출 호황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라는 거친 말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것은 한미동맹을 강화할수록 중국이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주목할 것이라는 이념의 논리에 기초한 것이었다. 미국의 대중국 정책과 동조화하는 것 말고는 복잡한 한반도를 관리할 목표와 비전이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한중간 신뢰 적자가 쌓여갔고 이후 이를 회복하는 데 많은 기회비용을 지불해야 했으나, 그나마 불법적인 계엄으로 다시 수렁에 빠졌다.

이런 점에서 대중국 실용 외교는 몇 가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첫째, 한미 동맹을 중시하면서도 한중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비록 전략적 크기가 다르지만 한미 관계를 다룰 때 중국 변수를 생각하고 한중 관계를 다룰 때는 미국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둘째, 한국의 대미 동맹정책, 중국의 대한반도 원칙처럼 넓은 합의구조 속에서 한국의 대중국 정책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셋째, 중국이 우리의 핵심 이익을 침해할 경우 제한된 손실(limited damage)을 보더라도 ‘아니오’라고 말하면서 외교적 자산을 축적해야 한다. 그래야 미국의 부당한 요구에 대해서도 ‘아니오’라고 할 수 있다. 넷째, 대만 해협문제, 북한 문제, 역사 문제, 보편적 인권 문제 등에 대해 준비된 메시지를 체계적이고 일관되게 발신해 매몰 비용을 줄여야 한다. 다섯째, 인공지능(AI) 혁명에 따라 ‘사람 없는 공장(dark factory)’의 출현, 미래산업에 필수적인 핵심광물 등의 공급망 재편, 세계 최대의 소비시장으로 부상한 중국에 재진출해야 하는 우리 기업과 민생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야 한다. 여섯째, 대중국 의존을 줄여야 하지만 그 방식과 목표는 탈중국과 같은 단선적이고 이념적인 결기가 아니라 무역을 다변화하고 외교적 지평을 확장하는 등 무대를 넓게 쓰는 글로벌 전략의 시야에서 접근해야 한다.

당장 10월 경주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계기에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한중관계의 가닥이 잡힐 것이다. 초보 선장은 파도를 두려워하고 노련한 선장은 안개를 걱정한다고 한다. 단기 성과의 유혹을 버리고 국익을 다시 생각하면서 집단지성을 찾아갈 때 외교에서도 실용주의가 꽃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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