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 김효주’의 봄은 찬란했다. 3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포드 챔피언십에서 우승했고, 4월엔 시즌 첫 메이저 대회 셰브론 챔피언십에선 준우승을 했다. 그리고 5월 한국에서 열린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 아람코 챔피언십에서 다시 한 번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김효주는 “작년 겨울에 정말 독하게 훈련을 했다. 그 결과가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 같아 뿌듯하다”고 했다. 김효주가 겨울 동안 독하게 칼을 간 이유는 지난해 다소 기대에 미치지 못한 성적을 거뒀기 때문이다. 김효주는 2020년부터 2023년까지 4년 동안 LPGA 투어에서 3승,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4승을 합쳐 총 7승을 거뒀지만 지난해에는 ‘무관’에 그쳤다. LPGA 투어에서 18회 출전해 톱10 입상 3회에 그쳤다. 최고 성적은 혼다 LPGA 타일랜드 공동 5위였다.
김효주가 무뎌진 칼을 다시 날카롭게 세우는 동안 주변의 도움도 컸다. 은퇴를 고민해도 이상하지 않을 서른 살에 김효주를 다시 훨훨 날게 한 5가지 원동력을 알아봤다.
1 상담사, 친구, 요리사…1인 3역 매니저
올해부터 김효주의 미국 생활 전담 매니저는 여자 축구대표팀 간판 수비수였던 심서연이 맡고 있다. 심서연은 2008년부터 17년간 태극마크를 놓치지 않았다. 김효주와 심서연은 3월 포드 챔피언십부터 함께했다. 둘은 첫 대회부터 우승을 합작하는 등 찰떡궁합이다.
김효주(1995년생)보다 6살 많은 심서연(1989년생)은 단순한 매니저가 아니라 상담사, 친구, 그리고 요리사 1인 3역을 하고 있다. 김효주는 “언니가 축구선수 출신이라 골프 기술적인 도움을 받기는 어렵지만 운동 선배로서 심리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며 “경기가 잘 안되거나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어떻게 풀어가는지 조언을 듣는다”고 했다. “확실히 언니랑 투어를 같이 다니니까 재미도 있고 편하다. 이동하면서 말도 많이 하고 서로 격려해 주면서 큰 도움이 된다”고도 했다. 김효주는 특히 한식을 좋아하는데 심서연이 김치찌개, 닭볶음탕, 미역국 등을 자주 해준다고 한다.
2 한눈에 꿰뚫어 본 오랜 스승의 눈
한연희 코치는 김효주의 오랜 스승이다. 김효주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을 때부터 지도했다. 지난해 한 코치는 김효주의 스윙이 예전과 약간 달라져 있음을 알아챘다. “효주는 원래 운동 센스가 뛰어나고 부드러운 리듬과 템포로 골프를 치는 스타일인데, 스윙이 딱딱해져 있더군요. 백스윙 때 왼발을 너무 고정하는 게 문제였어요.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몸에 근육이 더 생긴 것도 한 원인이었죠.”
한 코치는 김효주에게 백스윙 때 왼쪽 무릎을 자연스럽게 우측으로 움직일 것을 주문했다. 그 결과 상체의 가동 범위가 늘어나면서 스윙도 예전처럼 다시 물 흐르듯 부드럽게 흘렀다. 작지만 스윙에 큰 영향을 끼치는 이런 핵심을 오랜 스승이 콕 찍어 교정해 준 것이다.
한 코치는 김효주에게 “티잉 구역에서는 마음을 비우라”고도 조언했다. “효주가 가끔 장타자들과 칠 때면 너무 세게 치려고 하는 것 같았죠. 그러다 보면 리듬을 잃을 수밖에 없고 방향성에도 악영향을 미쳐요. 경쟁자를 의식할 필요 없이 ‘네 플레이에만 집중하라’고 했죠. 박인비나 리디아 고처럼 말이죠.”
3 유연성 강화에 초점 맞춘 주 6일 트레이닝
김효주는 2019년 말부터 팀글로리어스와 함께 ‘몸 만들기’에 주력하고 있다. 김효주는 “아무리 힘들어도 시즌 중에도 일요일만 빼고 매일 1시간에서 1시간 30분간 웨이트트레이닝을 하고 있다”고 했다. 초기에는 무게를 많이 드는 근육 운동에 초점을 맞췄지만 지난해부터는 유연성 강화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선종협 팀글로리어스 대표는 “2023년부터 미국 현지에 우리 트레이너를 파견해 함께하고 있다”며 “아무래도 김효주 선수도 유연성이 서서히 떨어지는 시기가 온 것 같았다. 스트레칭 훈련을 중점적으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근육은 충분히 키워 옷도 한두 사이즈 더 크게 입게 됐다”며 “현재 상태에서 몸집을 더 불리면 김효주 선수가 부담스러워할 수 있어 근육량을 유지하면서 스피드를 낼 수 있는 훈련에 집중했다”고 했다. 부상 방지 훈련도 빼놓을 수 없다.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주로 큰 근육 운동을 하고 대회 기간에는 엉덩이, 코어, 허리 등의 유연성 강화와 통증 예방에 역점을 두고 있다.
4 약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킨 ‘신세계 샤프트’
김효주가 예전의 기량을 되찾는 데는 장비의 도움도 한몫 단단히 했다. 요넥스 드라이버를 사용하고 있는 김효주는 지난해 10월부터 요넥스 카이자 라이트(KAIZA LIGHT) 샤프트를 장착했다. 이 샤프트는 무게가 30g대에 불과하면서도 X 플렉스 강도를 낼 수 있는 등 기존 경량 샤프트와는 완전히 차별화된 제품이다.
김효주는 “보통 가벼운 샤프트로 스윙을 하면 너무 휘청거린다. 근데 이 샤프트는 39g인데 X 스펙이라 신세계다”라며 “샤프트가 가벼워 헤드 스피드가 빨라지고 드라이버 컨트롤도 훨씬 쉬워졌다. 덕분에 샷의 일관성과 페어웨이 안착률이 높아졌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이어 “샤프트 교체 뒤 드라이버 비거리도 10m 정도 늘었다. 확실히 경기를 조금 더 편하게 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5 “11년 만에 메이저 우승”…신발 끈 동여매게 한 열정
김효주의 ‘서른 잔치’를 꽃 피운 가장 큰 도우미는 김효주 자신이다. ‘서른인데 서서히 은퇴 이후도 생각해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김효주는 “은퇴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지금 골프가 너무 좋다. 오히려 더 즐거워졌다”며 “훈련 열심히 하고 몸 관리 잘해서 오랫동안 투어 생활을 하고 싶다”고 했다.
김효주가 LPGA 투어에 뛰어든 건 2015년이다. 한 해 전인 2014년 메이저 대회인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서다. 이후 LPGA 투어 10년 동안 6승을 더했지만 메이저 승수를 추가하진 못한 아쉬움이 크다. 2018년 US 여자오픈, 2019년 에비앙 챔피언십, 그리고 올해 셰브론 챔피언십에서는 우승 문턱까지 갔지만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김효주는 “올해 일찌감치 1승을 했으니 남은 시즌엔 11년 만에 다시 메이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싶다”고 했다. 이번주 US 여자오픈을 시작으로 KPMG 여자 PGA 챔피언십, 아문디 에비앙 챔피언십, AIG 여자오픈까지 여름 동안 메이저 대회가 줄줄이 이어진다.
찬란한 봄을 보낸 김효주는 ‘뜨거운 여름’을 기대하고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