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이 황제로 등극한 지 두 해가 지난 시점인 1806년 파리 살롱전에서 안루이 지로데트리오종의 그림 한 점이 대단한 파장을 일으켰다. ‘대홍수의 광경’이라는 제목으로 출품된 이 작품은 처음에는 구약성서 창세기에 언급된 대홍수를 주제로 한 종교화로 분류됐으나 종국에는 작가의 해명을 거쳐 동시대 정치 현실을 비판하는 역사화로 재평가받았다. 높이 4m가 넘는 대형 화면에 등장하는 다섯 구성원의 가족 모습이 살롱전에 처음 공개됐을 때 관객들은 전율과 충격을 받았다. 심지어 그의 스승이었던 신고전주의 미술의 대가 자크 루이 다비드조차 이 그림은 예술의 존엄성과 이상주의를 위협하는 혐오스러운 작품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다섯 식구가 필사적으로 폭풍우에 맞서 싸우며 자연 재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이 그림 속 장면은 매우 기괴하다. 가족의 운명을 짊어지고 있는 가장의 등에는 늙은 아버지가 돈주머니를 들고 업혀 있으며 나뭇가지를 붙들고 겨우 버티고 있는 그의 손에는 이미 기절한 상태의 부인과 아이들이 매달려 있는 상황이다. 이들의 유일한 구원처인 나무는 밑동이 부러지기 직전인데 가족을 구하고자 애쓰는 남자의 모습은 영웅의 형상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극도의 위기 상황에서 공포에 휩싸여 있는 인간의 나약함이 적나라하게 표출돼 있는 이 그림은 당대 유행하던 신고전주의 양식과는 상당히 다른 화풍을 보여준다.
1806년 9월 파리의 한 문예지에 기고한 글에서 지로데트리오종은 이 작품이 현실 비판적인 정치적 알레고리를 담고 있음을 암시했다. 그는 이 글에서 많은 동시대인들이 사회적 폭풍우를 피하고자 안전한 울타리를 찾고 있지만 그것은 썩은 지지대에 불과하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혁명 시대의 폭력과 불안정성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나폴레옹이라는 강력한 지도자를 등장시킨 프랑스인들에게 그들의 선택이 또 다른 불행의 시작이 될 것임을 경고하는 작가의 의도가 이 작품에 내재돼 있다고 해석된다. 그런 점에서 이 그림은 나폴레옹 제정 시대를 증언하는 위대한 역사화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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