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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죽지 않는다…진화할 뿐 [북스&]

■불멸의 유전자(리처드 도킨스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

'진화의 흔적' 덧씌워진 유전체

수천세대 거치며 '생존법' 새겨

현재 생명체는 살아있는 역사서

유전자 풀은 미래로 여행하려는

바이러스가 빚어낸 협력의 화신

도킨스 50년간의 진화론 집대성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약 50년 전 ‘이기적 유전자’로 과학 저술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모든 생명체는 유전자의 생존을 위한 ‘기계’일 뿐”이라는 그의 주장은 많은 독자들에게 존재론적 충격을 안겼다. 한 독자가 “그런 책을 쓰고도 밤에 태연하게 잠이 오느냐”고 항의했을 정도였다. 도킨스는 이후에도 ‘눈먼 시계공’ ‘확장된 표현형’ ‘만들어진 신’ 등 논쟁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명저들을 발표하며 대중 과학서의 스타 저자로 자리매김했다.

신작 ‘불멸의 유전자’는 진화의 기원을 밝히고 미래를 엿보기 위해 유전자의 과거를 되짚는다. 도킨스는 현재의 생명체를 ‘살아 있는 역사서’에 비유한다. 모든 유기체의 몸은 조상들이 수천 세대를 거치며 살아남은 흔적이며 그들이 적응했던 환경과 생존 전략의 기록이라는 것이다. 도킨스는 이를 ‘유전적 팔림프세스트(양피지)’로 설명한다. 한 장의 양피지 위에 여러 세대의 글이 덧씌워져 있는 고대 문서처럼 유전체 역시 수많은 진화의 흔적을 겹겹이 품고 있다는 뜻이다. 책의 원제인 ‘죽은 자들의 유전서(The Genetic Book of the Dead)’는 이같은 도킨스의 통찰을 한마디로 나타낸다.

책은 다양한 동물의 사례와 비유를 들며 진화생물학 이론이 버거운 독자들의 부담을 덜어준다. ‘인간의 팔림프세스트’에는 당초 ‘사족 보행 동물’이라고 쓰여있었지만 수 만년의 세월을 거치며 ‘이족 보행 동물’이라고 새롭게 겹쳐 쓰여졌다고 설명하는 식이다. 아귀의 성생활, 코끼리 물범의 짝짓기, 뻐꾸기의 탁란 전략 등 진화가 만들어낸 기묘하고 놀라운 사례들이 생생한 삽화와 함께 소개된다.



‘유전서’에는 미래에 대한 예측까지 담겨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모하비사막의 사막뿔도마뱀의 경우 자신이 바싹 달궈진 모래와 돌 위에 태어날 것이라고 유전적으로 예측하고 극단적 생존 환경에 최적화된 피부 등을 갖고 태어났다. 도킨스는 이 책에서 생물의 형태, 행동, 그리고 이를 각인한 유전자는 모두 과거 환경에 대한 해석이자 대응이며 동시에 미래 생존을 위한 설계의 일부라고 본다.

이번 책은 그가 고수해온 ‘유전자 중심 진화론’을 집대성한 책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8장 ‘불멸의 유전자’와 9장 ‘우리의 체벽 넘어’는 도킨스의 양대 명저인 ‘이기적 유전자’와 ‘확장된 표현형’을 쉽게 요약한 버전이다. 초대형 베스트셀러인 이기적인 유전자에 대한 후일담도 서술했다. DNA에 담긴 정보는 대체 불가능하고 사실상 불멸의 존재다. 영원히 복제를 거듭하면서 후대로 이어진다. 도킨스는 유전자의 이런 독특한 성질 때문에 ‘이기적 유전자’ 책의 제목을 원래 ‘불멸의 유전자’로 지을 생각도 했었다고 한다.

다만 도킨스는 우리가 자신의 생존만이 목적인 ‘못돼 먹은’ 유전자의 노예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우리의 모든 유전자는 과거에 침입해 들어온 바이러스였으나 공존을 위해 핵 유전체 중 일부가 되었다. 도킨스는 “한 종(種)의 유전자 풀은 미래로 여행하려고 굳게 결심한 바이러스들의 거대한 군집”이며 “인간을 비롯한 생물은 바이러스들이 빚어낸 위대한 협력의 화신”이라며 인간 독자들을 위로한다.

84세인 도킨스가 낸 이번 책에 대해 신선함이 떨어지고 동어반복에 불과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유명세에 비해 일반 독자들이 읽기 어려웠던 기존의 저서들보다 대중적인 문체와 구성으로 문턱을 낮췄다는 점은 반길 만하다. 도킨스는 신간 홍보를 위한 해외 북토크 투어에 ‘마지막 인사’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총 18권의 책을 낸 스타 저자가 그동안의 과학 저술 여정을 일단락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을유문화사의 박화영 편집자는 “기존 도킨스의 명저들에 대한 입문서 성격의 책”이라며 “신규 독자들은 역순으로 독파하면 좋을 듯하다”고 소개했다. 2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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