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지를 받은 민족주의 우파 성향의 카롤 나브로츠키 무소속 후보가 당선됐다. 반(反)유럽연합(EU) 및 친(親)트럼프 노선을 앞세운 그의 승리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유럽의 결속을 흔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일(현지 시간) AP·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야권 후보인 나브로츠키는 전날 치러진 대선 결선에서 50.89%를 득표해 라파우 트샤스코프스키 후보(49.11%)를 간신히 꺾고 승리했다. 트샤스코프스키는 도날트 투스크 현 총리가 이끄는 여당 시민플랫폼(PO) 소속이다. 나브로츠키 후보는 1차 투표에서는 트샤스코프스키 후보에 소폭 뒤처졌지만 갈수록 격차를 좁히면서 결선투표에서 승리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보수 성향의 역사학자 출신인 정치 신인 나브로츠키는 ‘폴란드 우선(Poland First)’을 외치며 우크라이나 피란민 지원 축소,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반대, 유럽 난민 협정 탈퇴 등 반EU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는 “도움을 주되 먼저 자국민을 챙겨야 한다”고 주장하며 트럼프식 ‘미국 우선주의’를 본뜬 메시지를 내놓았다.
폴란드는 총리가 내각을 이끄는 체제지만 대통령 역시 법률안 거부권과 외교·국방 분야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가진다. 나브로츠키를 지지한 안제이 두다 현 대통령도 보수 야당 법과정의당(PiS) 출신으로, 이번 당선으로 총리와 대통령 소속 정당이 다른 ‘분점 정부’ 체제가 유지되게 됐다.
가디언은 “투스크 내각이 법치주의, 낙태, 성소수자 권리 등에 대한 선거 공약을 이행하지 못하는 교착상태가 나브로츠키 후보의 승리로 장기화될 것”이라며 “2027년 총선 전 대대적 개혁은 어렵거나 불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나브로츠키 대통령 당선인과 투스크 총리 간 갈등이 본격화되면 폴란드와 EU와의 관계도 악화될 수 있다. 투스크 총리는 선거 기간 “나브로츠키가 당선되면 폴란드는 EU 내에서 고립될 것”이라며 경고했다.
이런 가운데 외신들은 이번 선거로 유럽에서 한동안 주춤했던 ‘트럼피즘(트럼프주의)’이 반등의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나브로츠키의 대통령 당선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지한 해외 정치인이 처음으로 승리한 사례로 기록됐다. 앞서 치러진 캐나다와 호주·루마니아 선거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을 벤치마킹한 후보들이 줄줄이 고배를 마셨다. 나브로츠키는 지난달 백악관에서 열린 ‘국가 기도의 날’ 행사에 참석해 트럼프 대통령과 찍은 사진을 선거에 적극 활용했다. 크리스티 놈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도 폴란드 보수정치행동회의(CPAC)에서 그를 공개 지지하며 보수 지지자와 일부 유권자들의 결집에 힘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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