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동료 기자가 한순간에 법무부 장관 후보의 한 사람이 됐다. 인사혁신처 국민추천제 홈페이지에서 간단한 인증을 거친 뒤 기본 인적 사항과 경력, 추천 사유를 입력하자 금세 접수가 끝났다. 스스로를 장차관이나 공공기관장으로 추천하는 일도 물론 가능했다. 가상의 인물이나 유명인의 이름을 입력해도 특별한 제한은 없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고위급 인사 추천을 받겠다고 밝힌 가운데 10일부터 장·차관, 공공기관장 등 임명 대상 주요 직위에 대한 접수가 시작됐다. 참여는 오는 16일까지 온라인 웹페이지나 이메일을 통해 가능하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제도 시행 첫날부터 접수가 폭주했다. 전날까지 인사혁신처 국민추천제 시스템을 통해 9900여 건, 공식 이메일을 통한 접수는 1400여 건에 달했다. 추천이 가장 많이 몰린 직위는 법무부·보건복지부 장관과 검찰총장 순이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높은 관심이 국민 참여에 대한 기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 제도의 출발점은 인사권의 폐쇄성과 이른바 ‘회전문 인사’를 개선하겠다는 문제의식이다. 청년·지역인재·여성·전문가 등 기존 고위직 인선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돼 온 인재층을 국민의 눈으로 발굴하겠다는 취지다. 표면적으로는 대통령 인사의 폭을 넓히고, 국민참여의 틀을 도입해 인선의 공정성과 다양성을 확보하겠다는 의도가 담겼다.
그러나 부작용 사례들도 동시에 드러났다. 온라인에는 장난스런 의도로 의심되는 신청 사례가 우후죽순 등장하고 있다. 추천인 칸에는 윤석열(대통령) 이준석(여가부) 황교안(선관위) 장원영(문체부) 등 현실성과 무관한 인물이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X를 비롯한 SNS상에는 해외 거주자나 외국인도 추천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중국인을 위한 제도 아니냐’는 취지의 음모론도 고개를 드는 분위기다.
여당 안팎에선 특정 인물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표현하거나 추천 참여를 장려하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제도 취지와 맞닿아 있다는 평가도 있지만, 일각에선 자칫 ‘인기투표’로 변질돼 제도의 취지가 흐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자천이든 타천이든 접수된 인물은 인재 데이터베이스에 반영된다”면서 “실제 활용 여부는 대통령실과 협의해 결정할 예정”이라고 했다. 부작용 우려에 대해선 “추천 이유 등을 확인하면서 데이터베이스화하는 과정에서 장난성 추천은 걸러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민 추천이 어떤 과정을 통해 실제 인사에 반영되는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공무원들 사이에선 이 제도를 ‘이벤트성 행정’으로 보는 회의론도 만만찮다. 한 중앙부처 공무원은 “장·차관급 인사를 국민이 추천한다는 발상은 신선하지만 결국 보여주기나 명분 쌓기에 그칠 우려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30대 직장인 김모 씨는 “정말 내가 추천한 사람이 고위직에 임명되리란 기대는 없다”며 “실제로는 추천이라기보다 응원이나 팬심 표현에 가까운 느낌”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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