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수익률이 낮다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추진 중인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 도입이 난항을 겪고 있다. 올 3월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 도입 추진 자문단’이 공식 출범하며 여러 차례 논의를 거쳤음에도 여러 쟁점에서 결론에 이르지 못하며 표류하는 상황이다.
17일 고용노동부·보건복지부와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11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단은 올 3월 21일 첫 회의를 시작으로 현재 4차례 동안 만남을 가졌다. 원래는 이달 말 한 차례 회의를 더 가진 후 자문단 활동이 마무리될 예정이었지만 현재로서는 추가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는 현재의 계약형 퇴직연금 제도에서 수익률이 부진하다는 점이 지적을 받으며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국민연금처럼 외부의 독립된 기금이 퇴직연금을 운용·관리하도록 해 원리금 보장형으로 쏠려 있는 현행 제도의 문제를 바로잡고 수익률을 높이자는 취지다.
다만 시장 기대보다 진척이 없다. 무엇보다 손실이 났을 경우 책임 소재를 어떻게 할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 나오지 않고 있다. 확정기여(DC)형이나 개인형퇴직연금(IRP) 등 퇴직연금은 국민연금처럼 받아야 할 금액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닌 수익자가 번 만큼 수익을 가져가는 구조다. 손실에 대해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손실이 날 경우 세금을 투입하면 된다는 의견이 나오고는 있지만 그럴 경우 공적연금과 다를 게 없어 실현은 어려워 보인다.
퇴직연금을 일시금으로 수령하는 비율이 높다는 점도 문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수급 개시 계좌 중 연금 수령 비율은 10.4%에 그쳤다. 수익자들의 이직 비율이 높다는 점도 발목을 잡고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규모 자금을 굴리는 위탁회사 입장에서는 운용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주택구매, 임대차계약, 요양비 등의 이유로 중도 인출이 가능한 퇴직연금 기금이 국민연금처럼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될지는 의문”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현행 제도하에 디폴트옵션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국처럼 디폴트옵션 가입이 자동으로 되고 탈퇴를 희망하면 언제든 자유롭게 빠져나올 수 있는 ‘옵트아웃형’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선택권이 있으면 다양한 선택지 중 가장 안전한 상품을 고르려 하는 인지편향이 작용해 저(低)수익형 편중이 발생한다”며 “자동 가입이 되는 상품은 사용자(회사)가 지정하도록 하되 손해배상책임을 면제해 장기 연금 자산관리에 적합한 상품이 편입될 수 있는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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