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삶을 무너뜨리는 악랄한 불법 사채업자들의 검거 소식이 전국에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말 30대 싱글맘이 업자의 협박에 시달리다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한 후로 불법 사채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커지자 전국에 전담수사팀을 꾸리며 대대적으로 칼을 빼든 효과라는 분석이다. 다만 기껏 잡아놓아도 재판에서 실형 선고를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 양형 기준을 상향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은 사채업자 김 모 씨를 대부업법 위반 혐의로 10일 구속 기소했다. 김 씨는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약 4년간 대구를 근거지로 활동하던 사채 범죄 조직인 일명 ‘번개탄 추심단’의 일원으로 관련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에 최초 검거된 후 결국 재판에까지 넘겨졌다. 첫 공판은 다음 달 4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 조직은 피해자 수백 명에게 연이율 수천 %의 사채를 빌려준 뒤 상환이 늦어지거나 요구했던 만큼의 돈을 받지 못할 경우에는 온갖 협박을 동원해 연체료까지 요구했다. 십수 명의 조직원이 한꺼번에 달라붙어 협박하고 단톡방에 피해자 지인들까지 초대해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등 악질적인 추심 행각으로 악명이 높았다. 이들은 경찰의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대포통장 대신 ‘ATM 스마트출금’ 방식으로만 돈을 입금받기도 했다. 피해자가 본인 은행 애플리케이션 화면에 뜬 인증번호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면 사채업자가 ATM에 가서 번호를 입력하고 돈을 찾아가는 방식이다.
경찰에 따르면 올해 1분기까지 불법 사금융 검거 건수는 537건이다. 추세대로라면 지난해의 1975건을 가뿐히 넘길 것으로 보인다. 실제 지난달 초에도 경기도 오산에서, 이달에는 화성에서 불법 사채업자 일당이 경찰에 붙잡히는 등 사채업자 검거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 동대문경찰서도 2022년 7월부터 2023년 11월까지 ‘나체 추심’을 일삼아 10억 원 넘는 불법이득을 챙긴 사채 총책 A 씨를 지난달 검거해 구속 송치했다. A 씨는 2023년 7월 경찰에 최초 검거됐으나 구속 전 피의자심문에 출석하지 않고 도주했는데 경찰은 10개월 추적 끝에 호화 도피 생활을 하던 A 씨를 다시 붙잡았다.
경찰이 1년 가까이 불법 사채 문제에 수사력을 집중해 온 게 결실을 맺고 있다는 평가다. 앞서 지난해 9월 30대 싱글맘이 불법 추심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에서 경찰의 늑장 대응 의혹이 불거지자 경찰은 전국 지방청 광역수사단을 중심으로 전담수사팀을 꾸리고 검거 시 특진까지 약속하는 등 ‘사채와의 전쟁’에 나섰다.
다만 검거된 이들이 실형을 사는 경우는 여전히 드물다.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대부업법 위반으로 실형을 받은 피의자는 9.1%에 불과했다. 지난해 채권추심법 위반으로 검거된 피의자 701명 중 구속 기소된 경우는 0.8%뿐이었다. 싱글맘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30대 업자도 최근 보석으로 풀려나 논란이 일었다.
이상복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불법 사채는 피해자의 극단적 선택, 가정 파괴 등 심각한 피해를 끼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벌금형과 집행유예는 지양하고 중한 징역형 선고로 가해자를 사회로부터 격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