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정권 교체로 재의요구권(거부권)이라는 장벽이 사라진 만큼 강력한 입법 드라이브를 걸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주요 쟁점 법안 처리에 속도 조절을 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민생·통합 행보에 발 맞추기 위한 숨 고르기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가는 22일로 예정된 이재명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의 관저 오찬 결과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김병기 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20일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국가적 위기 극복을 위해 국회를 신속히 가동해야 한다”며 “민주당은 이재명 정부와 함께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내겠다. 국민의힘에 협력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3대(내란·김건희·채해병) 특검법’을 통과시킨 뒤 주요 쟁점 법안에 대한 언급은 자제하고 있다. 김 직무대행이 취임 일성으로 “신속하게 처리하겠다”고 했던 ‘상법 개정안’ 처리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지 않다.
당내에서는 김병기 원내지도부가 ‘이재명 정부 성공’에 보조를 맞춘 행보로 보고 있다. 민주당이 여당을 되찾은 후의 첫 원내사령탑인 만큼 모든 움직임이 이재명 정부 성공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강경 일변도로 나섰다가 정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데다 김 직무대행을 원내대표로 강하게 밀었던 ‘친명(친이재명)’ 지지층으로부터도 신뢰도 잃을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 직무대행이 17일과 18일 연이틀 국민의힘 원내지도부를 만난 것도 이러한 행보의 연장선으로 풀이된다.
민주당 원내지도부의 최우선 과제는 단연 추가경정예산안 처리다. 12·3 비상계엄 이후 취약 계층을 중심으로 한 민생 경제가 최악의 상황에서 이재명 정부 초기 경제 정책을 뒷받침할 추경 통과에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 국민의힘에 원(院) 구성 협상을 독촉하는 배경에는 추경안을 논의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구성이 필요하다는 이유도 깔려 있다.
새 정부를 빠르게 정상 궤도에 올리기 위한 내각 구성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당력을 쏟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모습을 통해 윤석열 정부와 대비되는 효과도 노리고 있다. 야당과의 대화는 외면한 채 거부권만 남발했던 윤석열 정부와는 달리 이재명 정부는 마음만 먹으면 행정권과 입법권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음에도 야당과의 ‘협치’ 노력을 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이 발목 잡기를 이어간다면 역풍은 되레 야당을 향할 것이라는 분석도 힘을 보태고 있다.
이 대통령이 취임식 직후 국회 사랑재 여야 지도부 오찬 회동을 한 지 20일도 채 안 돼 양당 지도부를 관저로 초대한 것도 이 같은 기조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대통령실은 “의제 제한은 없다”고 하지만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추경과 인사청문회에 대한 협조를 국민의힘에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러한 ‘허니문’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특히 국민의힘이 김 총리 후보자에 대한 집중 공세에 더해 이종석 국가정보원장의 인사청문 경과 보고서 채택마저도 거부하자 민주당 내에서는 ‘한계점에 다다랐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특검 정국까지 본격화되면 양당 간 갈등은 절정에 다다를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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