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25일(현지 시간)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에 출석해 “우리는 스테이블코인을 다룰 틀(framework)이 필요하다”며 “이 산업은 성숙화하고 있고 어떤 측면에서 보면 훨씬 더 주류가 돼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스테이블코인 규율 법안인 ‘지니어스(GENIUS)법’을 지지하면서 “이는 가상자산 산업의 높아지는 위상을 반영한 것이며 은행들은 가상자산과 관련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금융 산업에서 스테이블코인의 중요성을 인정한 셈이다.
미국은 중앙은행이 나서 스테이블코인 산업의 도입 필요성과 혁신을 제기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발행 주체와 감독권 등을 두고 힘겨루기만 벌이고 있다. 무분별한 허가에 따른 ‘코인런(대규모 가상자산 인출)’과 해외 자금 이탈 같은 부작용은 막아야 하지만 새로운 금융 트렌드인 스테이블코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우물 안 개구리’로 전락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가상자산이 빠르게 기존 금융시장에 스며들고 있다. 미 연방주택금융청(FHFA)은 이날 양대 국책 부동산담보대출 기관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이 대출 심사를 할 때 가상자산도 재산으로 인정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경우 소득과 신용점수, 보유 중인 자산을 따진 뒤 대출을 내주는데 가상자산도 포함하라는 뜻이다. 지금까지 가상자산 보유자들은 이를 달러로 바꿔야 재산으로 인정해줬다. 미 경제 방송 CNBC는 “전통적인 금융 인프라에 가상자산이 통합되는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평가했다.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스테이블코인 발행 무용론이 적지 않다. 한국은 기축통화국이 아닌 데다 한국은행 중심의 디지털화폐(CBDC) 정도면 충분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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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런’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스테이블코인과 연동된 자산 가격이 하루 3% 이상 벌어진 경우가 600회 이상이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같은 법정화폐와 1대1로 고정돼 있다는 강점을 내세우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최재원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스테이블코인은 이름과 달리 실제로는 ‘스테이블(안정적)’하지 않으며 과거에도 가치가 급락하는 코인런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자본 이탈 가능성도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발행되면 달러 스테이블코인과 더 교환하기 쉽게 된다”며 “달러 스테이블코인 수요가 늘어나고 외환 관리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사실상 민간이 화폐를 발행·유통한다는 측면에서 기준금리 조정을 통한 통화정책의 효과도 반감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발행 인가 대상을 두고도 논란이 많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달 초 발의한 ‘디지털자산기본법’은 스테이블코인의 업종 제한을 두지 않았다. 자기자본금 기준은 5억 원으로 설정했다. 이 때문에 중소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업체들이 난립하거나 도산 시 스테이블코인 자체의 신뢰도가 깨질 가능성이 높다는 말도 있다.
전문가들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허가와 발행은 서두르되 부작용은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급결제에서 스테이블코인의 활용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스테이블코인 전송량은 27조 6000만 달러(약 3경 7460조 원)로 비자와 마스터카드 합산 거래량을 웃돌았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활성화되면 달러 코인을 대체할 수 있는 경쟁력이 생길 수 있다”며 “게임과 K콘텐츠, 무역결제 등에 쓰일 수 있는데 지금은 위험 통제를 병행한 실험적 도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스테이블코인을 쓰면 은행과 카드사 같은 기존 금융사를 끼지 않고도 24시간 송금과 결제가 된다. 미국뿐 아니라 일본과 유럽·홍콩·싱가포르 등 주요국이 스테이블코인 법제화와 도입을 서두르는 이유다. 디지털소비자연구원의 윤민섭 박사는 “한은의 스테이블코인 가치 변동성 우려는 과도하다”며 “과거 코인런은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해 환불 보장이 없는 경우”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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