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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 제시하라"…한은의 '스테이블코인 3대 딜레마'

◆국정위, 한은에 압박수위 높여

① 발행 늘면 통화정책 효과 떨어져

② 인허가 감독권 확보도 불확실

③ CBDC 2차 테스트 보류 부담

"美 지니어스 액트 등 참고해

중앙銀 감독권한 제도화 검토"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금리 결정에 대한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재명 정부의 경제 청사진을 짜고 있는 국정기획위원회가 한국은행을 상대로 스테이블코인 문제와 관련해 “대안을 제시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은 그동안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대체로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런 가운데 국정위가 이 대통령 공약에 맞춰 이행 방안을 내라고 압박 수위를 높인 셈이다. 이에 따라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한은의 고민이 더 깊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29일 “최근 진행된 한은의 국정위 업무 보고에서 일부 위원들이 스테이블코인 문제를 두고 ‘금융 불안정성 문제는 인정하지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라’고 한은 측에 요구했다”고 말했다.

스테이블코인은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법정화폐나 국채 같은 안전자산을 담보로 발행된다. 이에 가상자산 시장에서 결제·거래 수단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한은은 그동안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대해서 신중한 입장을 보여왔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발행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금융 안정을 해칠 수 있다는 이유로 은행권 중심으로 점진적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업계에서는 국정위의 지시에 따라 한은이 대안 마련을 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스테이블 코인이 활성화되면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실효성을 떨어뜨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한은은 기준금리 인상·인하 수단을 통해 시중 통화량을 조절한다. 민간에서 발행하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사실상 ‘사설 화폐’인데 코인 업체들이 발행을 늘려 원화를 유치한다면 한은이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낮추더라도 시장에 돈이 돌지 않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만약 특정 발행사 부도로 대규모 ‘코인런’이 발생한다면 전통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 상황이라면 한은이 스테이블코인 인허가권이나 감독권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한은은 다른 국가 중앙은행과 달리 금융 업계에 대한 감독권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과거 산하에 은행감독원을 두고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와 감독을 수행했지만 1999년 금융 감독 체계 개편으로 은행·보험·증권감독원과 신용관리기금을 통합한 금융감독원이 신설되면서 감독 권한을 내줬다. 2000년대 들어서는 전자상거래 급증으로 전자지급결제대행(PG) 업체에 대한 감독 업무 필요성이 대두됐지만 이 역시 금융위원회가 가져갔다.



한은 관계자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이후 ‘디지털 뱅크런’까지 대비해야 하는 만큼 한은이 사전에 리스크를 점검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며 “현재는 시장 활성화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것 같아 아쉬운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한은이 중심이 돼 추진한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 테스트가 잠정 보류된 점도 악재다. 한은은 최근 CBDC 실거래 1차 테스트(한강 프로젝트) 참여 은행들에 2차 테스트 논의를 잠정적으로 중단·보류한다고 통보했다. 당초 한은은 1차 테스트를 이달 마무리하고 송금 기능 추가 등을 반영해 올 10월부터 2차 후속 테스트를 시작할 계획이었다. CBDC와 스테이블코인은 가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도록 설계됐다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발행 주체가 각각 중앙은행·민간기업으로 달라 경쟁 관계로 보는 시각이 많다.

한은 측은 “은행들이 직접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는 상황이라 일부 업체들이 CBDC 실험 참여에 주저해 2차 테스트를 일단 보류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현 정부의 스테이블코인 발행 법제화 추진 과정을 지켜보면서 입장을 가다듬는다는 계획이다. 우선 스테이블코인 제도 설계 시 중앙은행의 역할과 권한을 명확히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대표적인 참고 사례로는 유럽연합(EU)의 ‘미카(MiCA)’와 미국의 ‘지니어스 액트’가 꼽힌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코인 발행업자가 인가를 신청할 때 이에 대해 공식적으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또 해당 코인이 유럽의 통화정책이나 통화 주권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할 경우 인가 자체를 거부할 수 있다. 만약 인가가 이미 이뤄진 경우라도 이후 리스크가 발생하거나 제도적 기준에 미달한다고 판단되면 인가를 취소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지니어스 액트는 비은행이나 빅테크 기업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때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포함한 협의체의 만장일치 인가를 요구해 중앙은행의 감독 권한을 제도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한은의 한 고위 관계자는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 등 관계부처와 함께 법제화 방향을 논의하고 있으며 공동검사권 등 일정 수준의 권한 확보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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