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현 삼성전자(005930) DS부문장(부회장)이 미국 실리콘밸리 엔비디아 본사를 찾아 GB300 ‘블랙웰 울트라’향 고대역폭메모리(HBM)인 HBM3E 12단 공급을 타진했다. 그간 엔비디아 공급 차질로 자존심을 구겼던 삼성전자가 절치부심 끝에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6월 30일(현지 시간) 테크계에 따르면 전 부회장은 지난주 미 실리콘밸리를 찾아 엔비디아와 HBM3E 12단 공급 관련 협상을 가졌다. 5월 초 방미길에 오른 후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실리콘밸리를 다시 찾은 것이다. 이 자리에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참석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HBM3E 12단 품질 인증(퀄 테스트)과 내년 공급 가능성에 관한 구체적인 논의가 오간 것으로 파악된다.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는 “베이스·코어다이를 개선한 4세대 1㎚(나노미터·10억분의 1m)급 D램(1a) 기반 HBM3E 12단 품질이 경쟁사에 밀리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내년 대량 출하될 블랙웰 울트라에 대한 공급 여부를 타진했다”며 “삼성전자 내부적으로는 타사 공급 사례 등을 통해 품질이 입증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삼성전자는 AMD 인공지능(AI) 가속기 ‘MI350X’ 시리즈에 대한 HBM3E 12단 납품을 공식화했다. MI350X 시리즈가 예상을 뛰어넘는 성능으로 호평받으며 삼성전자 HBM3E 12단에 대한 의구심도 줄어드는 분위기다.
올해 말부터 출하되는 ‘블랙웰 울트라’는 내년은 물론 내후년까지 지속적인 수요가 확실시된다. 내년 말 나올 차기작 ‘베라 루빈’ 초기 물량이 극도로 제한적이어서다. 블랙웰 울트라향 HBM3E 12단 초도 공급 계약은 SK하이닉스(000660)·마이크론과 일찌감치 마무리됐다. 다만 내년도 물량에 대한 최종 계약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반도체 업계에서는 엔비디아가 ‘제3의 공급사’인 삼성전자를 염두에 두고 저울질을 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삼성전자 납품이 시작된다면 엔비디아가 SK하이닉스·마이크론과 가격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 SK하이닉스 HBM3E 12단 평균판매가(ASP)는 8단 대비 60%가량 높다고 알려져 있다.
엔비디아는 같은 이유로 7~8월 중 삼성전자 샘플을 받아보기까지 ‘베라 루빈’ HBM4 채택 일정을 연기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는 HBM4에 사활을 걸고 있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은 HBM4에 5세대 10나노급 D램(1b)을 쓴다. 반면 삼성전자는 6세대(1c) 기반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전 부회장 또한 이번 엔비디아와의 만남에서 삼성전자 HBM4 성능에 대한 자신감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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