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의 확률론적 사고를 비판하면 남긴 말이다. 역설적으로 그의 상대성이론은 양자역학의 주관찰 대상인 전자를 설명하는 데 꼭 필요한 도구가 됐다. 전자는 양자역학으로 분석해야 할 정도로 작은 입자인 동시에 상대성이론이 필요할 만큼 빠르기 때문이다. 두 이론의 출발선이 달라 일관된 설명이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그 간극을 메우는 이론이 물리학 최고 권위지인 피지컬 리뷰 레터즈(Physical Review Letters)에 6월 27일 공개됐다. 전자의 움직임 다루는 고체물리학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른다는 평가가 나온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물리학과 박노정 교수와 연세대학교 김경환 교수팀은 전자의 스핀을 고체 속에서 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을 제시했다고 8일 밝혔다.
전자는 두 가지 회전이 있다. 스핀(Spin)과 궤도각운동량(Orbital Angular Momentum)이다. 스핀을 지구의 자전에 비유한다면 궤도각운동량은 태양을 도는 공전에 비유할 수 있다. 이 스핀과 궤도각운동량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스핀-궤도 결합’(Spin-Orbital Coupling)을 통해 물질의 자성, 전도성 등을 결정짓는다.
문제는 스핀-궤도 결합이 상대론적 고에너지 영역에서 유도되는 반면, 고체나 반도체처럼 실제 물질을 다루는 환경에서는 낮은 에너지에서의 양자역학이 지배적이라는 점이다. 물질 내에서 스핀-궤도 결합을 연구하려 할 때, 두 이론이 서로 다른 전제를 갖고 있어, 하나의 계산 틀 안에서 현상을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예를 들어 고체 격자 안에서는 궤도각운동량을 정확히 정의하기도 어렵다.
연구팀은 궤도각운동량을 쓰지 않고 물질 내의 상대론적 효과인 스핀-궤도결합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을 제안했다. 스핀-격자 상호작용(spin-lattice interaction)이라는 개념을 정의한 것이다.
연구팀은 이 새로운 계산법을 실질적인 물리계에 적용해 검증했다. 1차원 도체(Pt 사슬), 2차원 부도체(h-BN), 3차원 반도체(GaAs) 등 다양한 물질에 대해 스핀 분포, 스핀 전류, 자기 반응 등을 기존 방식보다 더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예측해낼 수 있음을 확인했다.
공동연구팀은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 사이의 간극에서 비롯되던 계산적 비일관성을 해소한 방식”이라며 “향후 스핀트로닉스,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소자 등 스핀 기반 전자 소자 설계에 기초 이론으로 널리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UNIST 김범섭 박사(현 펜실베니아대학교 박사후연구원)가 제1저자로 참여했다. 연구수행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연구재단, UNIST-삼성전자 반도체 산학과제, 연세대학교, SRC-양자각운동량동역학센터의 지원을 받아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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