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산자동차가 미국 공장에서 제조해 캐나다로 수출하던 차량의 생산을 전면 중단했다. 미국과 캐나다 간 관세 갈등이 격화되는 가운데 향후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판단에서다. 미국 내 전기차(EV) 수요 둔화도 예상되면서 닛산은 EV 전략 차종의 생산 시기를 최대 1년 미루기로 했다.
9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닛산은 성명을 통해 “미국 테네시주와 미시시피주 공장에서 조립하던 3개 차종의 캐나다 수출용 생산을 5월부터 중단했다”고 밝혔다. 생산 중단 대상은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패스파인더’ ‘무라노’, 픽업트럭 ‘프론티어’로 모두 북미 수출 전략의 핵심 모델이다.
닛산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정책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 자동차 수입에 25%의 추가 관세를 부과했으며 캐나다도 즉각 보복관세를 시행했다. 북미 자유무역 체제를 기반으로 구축된 양국 간 자동차 산업에 균열이 생기며 닛산의 생산 계획도 차질을 빚게 된 것이다.
닛산은 미국 미시시피주 공장에서 생산될 예정이던 SUV형 EV 2종의 출시 일정을 당초 2028년에서 2029년 상반기로 최대 1년 늦추기로 했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통과시킨 감세·지출법(OBBBA)에 따라 EV 구매 시 제공되던 세액공제 혜택이 올 9월 말 폐지될 예정인 까닭이다. 가격경쟁력 약화와 수요 위축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닛산뿐 아니라 일본 완성차 업계 전반에서 EV 전략 수정이 표면화하고 있다. 도요타는 인디애나 공장에서의 EV 생산 계획을 철회하고 수익성이 높은 하이브리드 및 대형 가솔린 SUV ‘그랜드 하이랜더’ 생산을 확대하기로 했다. 혼다 역시 전략 차종으로 개발하던 대형 전기 SUV 프로젝트를 전면 중지했다.
장기적인 EV 수요 확대를 기대했던 일본차 업체들은 그간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가격 인하 전략을 유지해왔다. 실제로 올해 4월 기준 미국 내 EV의 평균 할인율은 차량 가격의 14.2%로, 가솔린 차량의 두 배 수준에 달한다. 그러나 수익성 악화가 누적되면서 기업들이 잇따라 투자 철회에 나서는 양상이다.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는 2030년까지 EV 점유율을 50%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밝혔지만 EV 시장점유율은 7%대에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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