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를 100% 사용하는 ‘RE100’ 캠페인에 따라 탄소중립을 실현할 목표로 잡은 2042년에도 에너지 소비가 많은 4대 산업(철강·석유화학·반도체·데이터센터)에서 무탄소전력이 부족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무탄소전력이 재생에너지로 한정된 탓이다. RE100을 실현하려면 전력구매계약(PPA) 제도를 활성화하고 현재 재생에너지로만 충당하도록 조성된 무탄소전력 공급망도 원자력발전까지 확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14일 'PPA 제도 활성화를 위한 정책과제'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에서 한경협은 4대 산업의 전력수요를 현재 재생에너지로만 한정된 무탄소전력으로 충당할 수 있는 비율(무탄소전력 충당률)이 올해 53.4%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38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연평균 8.7%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4대 산업의 전력소비량 연평균 증가율(5.2%)을 웃도는 수준으로 재생에너지 공급은 꾸준히 확대될 전망이다.
문제는 재생에너지가 빠르게 증가해도 2038년 4대 산업의 무탄소전력 충당률은 81.6% 수준에 그친다는 점이다. 산업 현장에서 필요한 무탄소전력량을 재생에너지만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셈이다. 심지어 무탄소전력에 대한 수요가 전 산업으로 확장될 경우 해당 충당률은 더 감소할 가능성도 있다.
나아가 무탄소전력에 대한 수요는 에너지 소비가 많은 철강, 석유화학, 반도체, 데이터센터 등 4대 산업을 중심으로 최근 더 높아지고 있다. 철강과 석유화학은 중국의 점유율이 높아지는 범용제품 대신 고부가가치 저탄소제품으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고 반도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도 탄소 감축 열풍이 불고 있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ASML 등 글로벌 원청기업들은 향후 10~15년 이내에 넷제로(탄소배출량 0)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 공급업체들은 무탄소전력 사용과 탄소 감축을 강하게 요구받고 있다.
보고서는 무탄소전력 초과수요 해소를 위해 'PPA 제도 활성화'가 최우선 과제로 이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PPA는 기업과 발전사업자가 계약을 맺어 이뤄지는 전력 공급 방식으로 조달 가능한 무탄소전력원은 현재 재생에너지에 한정돼 있다. 한경협은 여기에 현재 가동 중인 원자력발전을 포함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무탄소전력 초과수요를 해소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경협은 최근 5개년 평균 79.4% 수준인 원전의 이용률을 10%포인트 높이고 기존 원전을 PPA에 포함시킬 경우 2042년까지 4대 산업의 무탄소전력 초과수요를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무탄소전력을 재생에너지로만 조달할 수 있는 현 제도는 2042년 무탄소전력의 전력수요 충당률은 93.0% 수준에 불과하지만 조달 가능한 무탄소전력원에 기존 원전을 포함하고 동시에 원전의 이용률을 상향하면 충당률이 101.8%로 8.8%포인트 증가한다. 이미 미국, 프랑스 등이 PPA에 기존 원전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원전을 PPA에 포함하면 기업들이 경영판단에 따라 자율적으로 전력원을 선택할 수 있고 무탄소전력의 초과수요를 완화시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어 한경협은 PPA 활성화를 위해 재생에너지 구매 시 지불하는 전력거래대금 중 망 이용료, 전력기반기금 등 부대비용을 한시적으로 면제 또는 경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PPA 제도가 활성화되면 무탄소전력원에 대한 공급이 증가하게 되고 무탄소전력 초과수요 해소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실제 해외는 PPA 확산을 위한 지원정책도 시행하고 있다. 일본 경산성은 2020년부터 기업의 PPA 비용에 대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PPA에 참여하는 발전설비 투자비도 3분의 1도 정부가 지원한다. 대만은 2023년부터 PPA 망 이용료의 80%를 경감해주고 있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국내 주력산업은 경영위기와 함께 무탄소전력 사용 요구를 직면하는 등 이중고를 겪고 있다"며 "우리 기업들이 효율적으로 무탄소전력을 수급할 수 있는 제도 환경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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