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이 18일 기자 간담회에서 미국과의 관세 협상과 관련해 “앞으로 2주에 한국 경제의 운명이 달려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면서 “지금은 조금 손해 보더라도 미래를 위해 줄 건 좀 줘야 한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미 철강과 자동차·부품에 각각 50%,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한 가운데 다음 달 1일부터 예정대로 모든 대미 수출품에 25% 상호관세까지 물리게 되면 우리 기업들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최근 한경협이 실시한 수출 기업 설문조사에서는 ‘미국 관세가 15%를 넘으면 감내하기 어렵다’는 응답이 92%에 달했다.
우리 기업들이 관세 폭탄 대응만으로도 버거운 와중에 정부와 여당은 추가 상법 개정과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 입법에 속도를 내며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달 초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데 이어 집중투표제 도입 외에도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을 추가한 ‘더 독한’ 상법 개정안 처리를 밀어붙이고 있다. 류 회장은 “한꺼번에 다 하면 부작용이 있으니 우리 경제를 위해 페이스를 늦춰가는 게 어떨까 싶다”며 에둘러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민주당은 다음 달 상법 개정 강행을 예고한 상태다. 민주당은 불법 파업 조장 우려가 큰 노란봉투법도 1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회부해 다음 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할 가능성이 크다.
한미 협상에서 우리가 내세울 수 있는 카드는 기업들의 대미 투자 확대와 산업 협력이다. 한미 ‘윈윈’의 접점을 찾아 미국을 설득하려면 그만큼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재명 대통령도 최근 대기업 총수들을 잇따라 만나 관세 협상 대응을 위한 정부·기업 ‘원팀’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당정이 정작 기업의 요구를 외면한 채 규제 고삐만 죄려 한다면 기업들이 뛸 동력을 찾을 수 없게 된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정부가 친기업을 계속 강조하는데 나쁜 것만 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기업이 원하는, 더 성장하기 위한 규제 개선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코앞으로 닥친 ‘관세 태풍’을 극복하려면 규제 입법으로 기업들을 압박하는 것을 멈추고 그 대신에 우리 기업들이 위기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도록 전방위로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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