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조만간 기업인들에 대한 대표적인 형사 처벌 수단인 배임죄 완화를 위한 태스크포스(TF)를 만들고 개정에 착수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30일 “배임죄 남용으로 기업 활동이 위축되고 있다”고 밝힌 데 따른 조치다. 모호한 배임죄 조문을 명확히 하고, 경영판단 원칙도 구체적으로 명문화 할 것으로 보인다.
31일 기획재정부와 법무부에 따르면 이형일 기재부 차관과 이진수 법무부 차관은 ‘경제형벌 합리화 TF’ 공동 단장을 맡고 배임죄 개선 방안 마련에 나선다. 법무부 관계자는 “경제계와 법조계 등 전문가 목소리를 최대한 많이 듣고 개편안 내용도 다 열어놓고 검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TF는 조만간 첫 회의를 시작으로 8월 중 개편안을 내놓을 것으로 전해졌다.
TF에선 상법상 특별배임죄(제382조)를 폐지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이미 형법상 배임·업무상 배임죄에서 금액이 5억 원 이상이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으로 가중 처벌돼 실무상 적용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또 형법상 배임죄(제255조)는 유지하되 조문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고, 배임죄가 적용되지 않는 경영판단 원칙에 해당하는 행위를 명시적으로 담는 것도 검토 대상이다.
배임죄는 기업가를 수사할 때 적용하는 대표적인 수단이다. 형법상 배임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를 위배하는 행위로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해 손해를 가한 행위’로만 정의한다. 모호하게 해석될 여지가 많아 검찰은 그동안 배임죄를 통해 기업에 대한 광범위한 수사를 해왔다. 지난해 사법연감에 따르면 횡령·배임죄의 무죄율은 6.9%로 전체 형사사건(3.3%)의 2배에 달할 정도로 무리한 수사가 많았다는 비판도 뒤따랐다.
이 같은 논란이 늘어나자 법원과 검찰도 배임죄 적용을 엄격하게 보는 추세다. 200억 원 규모 횡령·배임죄로 기소된 조현범 한국앤컴퍼니 회장은 한국타이어가 한 계열사로부터 부품을 매입하면서 다른 제조사보다 비싸게 사들인 경영 판단을 해 회사에 손해를 입힌 혐의를 받았지만 법원은 무죄로 판단했다. 법무부도 최근 "무분별한 배임죄 적용으로 경영위축을 초래할 염려가 있다"면서 "축적된 판례에 비춰 면밀하게 수사 여부를 판단하라"고 대검찰청에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민철기(사법연수원 29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배임죄의 가장 큰 문제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범위가 넓고 임무위배행위의 의미가 모호하다는 점”이라며 “이 때문에 행위 당시 어떤 의사결정이 배임인지 여부를 명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이어 “일상 경영활동을 사후에 법적 잣대를 들이대 무리하게 형사처벌 하는 수사기관의 관행도 근본적인 문제”라고 덧붙였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